1탄: 어필리에이트 마케팅과 어카운트 매니저
시간이 정말 빠르다. 2월 말 꽃 필 때쯤에 런던으로 와서 벌써 낙엽이 지고 크리스마스 불빛이 켜지는 계절이 왔다. 입사를 한 지도 벌써 만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취직하자마자 입사 후기를 쓰고 그동안 정신없고 너~~무 바빠서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얼추 업무에도 적응이 되었고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올해가 가기 전에 얼른 글을 써야지 하고 다짐했다.
항상 영국에서 무슨 일을 하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왜냐면 업계가 생각보다 너무 복잡하고, 영국/미국에서는 소비자들에게도 굉장히 익숙하고 정착된 업계이지만 아시아 시장, 특히 한국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 인터뷰 준비를 할 때부터, 그리고 입사를 하고 나서도 업무는커녕 업계 자체를 이해를 하기에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대체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매일매일 멘붕이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대충 감이 잡힌다고나 할까.. 아직도 너무너무 어려운 업계.. 그래서 누가 무슨 일을 하냐라고 하면 그냥 '디지털 마케팅 관련된 테크 펌에서 일한다'라고 얼버무린다. 그게 최선이기 때문이다^_ㅠ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한 번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우선 나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Affiliate Marketing)' 업계로 이직했다. 어필리에이트 마케팅은 크게 디지털 마케팅에 소속된 한 갈래인데, 브랜드(혹은 광고주, 머천트)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외부 블로거나 웹사이트, SNS의 인플루언서 등(모두 통합해서 '퍼블리셔'(Publisher)라고 부름)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 결과에 따라서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의 마케팅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내가 패션 블로거라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제품 링크를 클릭해서 실제로 제품을 구매하게 되면, 패션 브랜드에서 매출의 일정 부분을 판매 수수료로 나에게 지급한다. 잘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어간다는 그 마케팅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많은 네이버 블로거들이 이 제휴 마케팅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알려진 쿠팡 파트너스나 네이버 애드 포스트가 제휴 마케팅의 갈래이긴 한데,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은 결이 조금 다르다.
우리 회사는 제휴 마케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퍼블리셔들을 위한 플랫폼인데, 특히 영국과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 유명한 미디어 퍼블리셔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고 제휴 마케팅을 통한 수익을 정확하게 트래킹 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전 세계 다양한 광고주들과 퍼블리셔들을 기술적으로 연결시켜준다. 퍼블리셔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가 없으면 본인들의 수익을 광고주별로 일일이 트래킹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굉장히 귀찮고 무엇보다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그 작업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쉽게, 정확하게 가능하다.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대가로 퍼블리셔들은 본인들의 수익의 일부를 또 우리 회사에 지급하고 그게 우리 회사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가 이 업계에서 가장 큰 퍼블리셔 네크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들의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네크워크를 활용하기 위해 우리 회사와 손을 잡는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는 광고주와 퍼블리셔를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우리나라는 제휴 마케팅하면 블로거, 인플루언서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우리 회사와 함께 일하는 퍼블리셔들은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웹사이트를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그룹들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Conde Nast, Hearst)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단순히 광고를 기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콘텐츠 퍼블리셔' 들이라 광고주들이 매우 선호한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 업계에는 크게 2개의 이해관계 그룹이 있다 - 퍼블리셔(Publisher) 그리고 광고주(Merchant). 제휴 마케팅 자체가 '윈윈(Win-Win)' 모델이기 때문에 이 두 그룹은 긴밀하게 협업해서 최대한의 매출을 이끌어내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데, 우리 팀은 양쪽을 관리하는 Commercial Team이고, 나는 우리 회사의 주요 매출을 담당하는 광고주들을 관리하는 '머천트 어카운트 매니저(Merchant Account Manager)'이다. 한 달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쳤고 10월부터 정식으로 나의 포트폴리오를 받았다. 나는 주로 영국과 유럽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래서 영국에서 굵직굵직한 광고주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나의 궁극적인 역할은, 광고주들이 경쟁력 있는 판매 수수료율을 제시해서 퍼블리셔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판매를 올릴 수 있게끔 그들과 협의하고, 매 쿼터 전략을 짜서 최대한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한국에서 패션 업계에서 일을 할 때는 항상 1개의 브랜드만 담당하는 브랜드 매니저였는데, 지금은 20개가 넘는 광고주들을 모두 관리하는 어카운트 매니저가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항상 광고주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1개만 관리하는 것도 머리가 터졌었는데 여러 광고주들을 모두 관리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정말 재미있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브랜드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점이다. 내 포트폴리오 안에는 대략 20개 정도의 큰 광고주들이 있는데, 우선 가장 큰 고객은 영국에서 제일 큰 유통 기업인 John Lewis이다. 처음에 John Lewis가 내 담당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리고 패션 업계에서 일을 한 경험 덕분인지 운 좋게도(?) 다양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도 내 담당 어카운트가 되었는데, 크게는 NET-A-PORTE, Matches Fashion, ASOS가 있고 ARKET, & Other Stories, Gymshark 등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자주 사 입는 브랜드들도 있어서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문화 충격이었던 것은 내 포트폴리오 매출 TOP 5안에 Lovehoney라고 아주 큰 성인 용품 브랜드가 있다는 것... 성인 용품 시장이 영국/미국/유럽 내에 그렇게 큰 지도 처음 알았고, 우리나라는 다소 음지에 있는 문화인데 당당하게 즐기는 문화임에 두 번 놀랬다. 섹스토이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일하는 기분, 정말 짜릿함. 여하튼 어카운트 매니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고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전 세계의 큰 브랜드/회사와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설레고 더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나게 한다. 앞으로 이 곳에서의 내 커리어가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기대된다.
1탄은 대략적인 나의 업계, 직무 이야기였고 2탄은 좀 더 디테일한 업무 이야기, 장기적인 커리어 디벨롭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