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다양성' 이야기 2 - 외모와 신체
한국에서는 작든 크든 '나의 외모와 신체'에 대한 스트레스를 늘 받았었던 것 같다. 성형 수술을 하는 것이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권장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지금도, '다이어트'는 인생에서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존재이다. 나의 다이어트 역사는 10대부터 시작된다. 고등학생 때 살을 빼겠다며 석식을 먹지 않고 운동장을 돌았던 기억이 있다. 20대가 되어서는 건강하지 못한 온갖 다이어트법으로 내 몸을 괴롭혔었고, 30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운동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었다.
나는 영국에 와서 비로소 외모와 신체에 대한 강박을 서서히 놓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유로는, 하나의 미의 기준으로 모두를 재단하기엔 인종, 문화 등 주변이 정말 다양하다. 주변에 친구들이 종종 '한국여자들은 어쩜 그렇게 모두가 다 날씬하고 예쁘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만큼 한국에서는 하얗고 깨끗한 피부, 마른 몸매, 큰 눈, 높은 코, 갸름한 턱, 작은 얼굴 등 나열하라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미의 기준이 꽤 구체적이고 획일화되어 있다. 여기도 당연히 미의 기준이 있지만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고, 어떤 특정 외적 부분에 집중되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 성품이 매력의 요소에 굉장히 큰 역할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을 하면 한국에서 대부분은 키 x 이상, 호감형 얼굴, 너무 마르지 않은 체형 등 다양한 외적인 조건들을 내세운다면 이곳에서는 자기 일에 열정 있는 사람, 독립적인 사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등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태도, 가치관을 언급한다. 물론 여기도 '난 금발이 좋아' 식의 부류도 당연히 있는데 그들은 보통 미성숙하고 피상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외적인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모는 사람의 매력을 결정하는 데 부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회 전반에 신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영국에 와서 숨통이 트였던 것은 바로 '옷 사이즈'. 특히 한국 여성의 평균적인 기성복 사이즈는 55, 66 2가지이고 (혹은 S/M/L 3가지) 간혹 Free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사이즈가 존재한다. 나는 한국에서 평균적으로 55에서 66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운동 시작하고 몸도 커지고, 나중엔 살도 찌다 보니 66도 겨우 들어갈 정도가 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선 그 이상의 사이즈는 찾기도 힘들었지만 나에게 맞는 사이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갇혀서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결론과 함께 '몸을 옷에 맞추는' 해결책을 택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아니라, 모두가 55 아니면 66 둘 중 하나의 사이즈에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포용력과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적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영국에서는 사이즈가 보통 4나 6부터 시작해서 2 단위로 커지는데 대부분 16-18까지 있고(6-7가지 사이즈) 어떤 브랜드는 플러스 사이즈를 위해서 30까지도 나온다. (무려 13가지 사이즈) 그리고 신체적 특징에 따른 라인도 따로 있다. 키가 평균적으로 작은 여성들을 위한 "Petite" 라인 (당연히 키가 큰 여성들을 위한 "Tall" 라인도 있음), 가슴과 엉덩이보다 허리가 상대적으로 더 얇은 사람들을 위한 "Hourglass"라인 등 다양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여성들을 모두 포용하려는 노력이다. 난 여기서 사이즈 10을 입는데 살이 조금 쪘다 싶으면 12로 가고 그 반대면 8을 선택한다. 한국에서는 사이즈 변화에 굉장히 일희일비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선택에 대한 부담이 신기하게도 전혀 없다. 내 몸이 어떻게 변하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기 때문이다.
패션 MD 출신으로서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이즈별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며 특히 재고와 연결된 문제라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Free 사이즈'라는 것은 브랜드가 소비자의 다양성이나 니즈를 고려하기보다는 재고 운영 효율을 위해 (즉, 이익을 위해) 개발해 낸 옵션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이 없으니 자연스레 내 몸을 당장 가능한 선택지에 맞추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두가 자연스레 '평균 사이즈'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국에 와서 외모의 중요성에 대한 관점이 바뀌다 보니 내 가치를 단순히 외모에 두지 않는 방향으로 점점 나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외적인 요소 이외에 시간과 돈을 투자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운동에 있어서 나의 우선순위와 목적은 사실 단순히 멋진 몸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내 삶에 에너지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찾다 보니 운동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어졌다. 그렇게 이곳에 와서 러닝을 처음 시작했고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으로도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을 많이 쏟게 되었는데 독서나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 요즘은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다.
최근에 내 마인드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를 느꼈던 계기가 6월 스코틀랜드 여행이었다.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우리 커플은 여행하는 내내 하이킹을 정말 매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피부도 엄청 타고 주근깨가 많이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피부과에 달려갔을 텐데 이것도 매력이지 하며 웃고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엔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인생 사진'을 남기겠다며 한 번 입고 말 옷도 엄청 사고 챙겨갔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실용성에만 초점을 맞춰서 레깅스, 운동복만 알뜰하게 챙겨서 갔더니 짐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단순히 '예쁜 사진'을 찍는데 시간을 쏟기보다는 둘이 함께하는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진을 정말 많이 건졌다. 얘기하다가 빵 터져서 웃는 장면, 하이킹하다가 힘들어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 등 오히려 그런 사진들이 당시 순간을 가장 잘 담아낸다. 예전엔 보정 어플이 아닌 원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괜히 싫고 부담스러웠고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항상 조금이라도 보정을 해야지 안심이 되었는데 이제는 남자친구가 카메라를 막 갖다 대도 대놓고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그런 사진을 남자친구가 본인의 SNS에 막 올려도 아무렇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왜 허락도 없이 이상한 사진 올리냐며 득달같이 화를 냈을 텐데 말이다. 그런 나의 모습도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쁘다는데, 그럼 됐지 뭐.
애석하게도 이런 외모에 대한 강박과 부담감은 여성에게 특별히 과하게 지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큰 챌린지이다. 나도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주 오랫동안 그 굴레에 갇혀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문득문득 한국에서 가졌던 강박들이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그래도 내가 극복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위에서 언급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서포트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살 빠졌네!' '너 얼굴 정말 작다' 등 외모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칭찬이 되고 안부 인사가 되는 곳에서는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매일 특정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포하는 미디어, 산업에 둘러싸인 문화에서는 단순히 "Love yourself"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당장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는 여기서 살다 보니 어쩌다 하게 된 것들인데 외모 강박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바로 '외모 평가와 자기 비하'를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타인의 외모에 대해 평가(그게 칭찬이든 욕이든)를 하거나 자기 외모나 신체에 대해 비하하곤 한다. (나 살쪘어, 나 늙어 보여, (친구의 사진을 보며) 몸매 쩐다, 너 살 빠졌다, 너 왜 이렇게 예뻐졌어? 등) 간혹 칭찬하는 건데 뭐 어떠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칭찬도 결국엔 어떤 특정한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칭찬을 할수록 그 반대에 대한 기준도 늘어나는 법이다. 의식적으로 멈추기 위해서 예를 들면 '자신과 타인의 외모에 대해 일주일 노코멘트하기' 등의 챌린지를 한 번 해보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한국 사회가 알게 모르게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해왔는지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그랬음..)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나중엔 나처럼 외모에 대한 모든 코멘트가 불편해지는 순간이 온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외모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외모에 대한 다양성 존중의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자기 몸 긍정주의 (Body Positivity)'를 실천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선 나를 변화시키면 주변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사회의 인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정말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지금보다 더 예쁘게 가꾸는 것이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마음속으로라도 늘 떠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