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Apr 11. 2022

한국과 굉장히 다른 영국 취업 시장

런던에서 구직 활동을 통해 느낀 점 8가지


나는 해외 경험이라곤 2012년에 1년동안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이 전부인 토종 한국인이다. 한국 대학을 졸업했고 한국에서만 7년의 직장 경력이 있다. 한국의 회사를 관두고 무작정 영국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구직준비를 시작했고, 매일 뜨는 공고들을 확인하며 되는대로 여기저기 지원하는, 어렴풋한 희망과 막연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취준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구직 활동을 하면서 런던 구직 시장의 특징, 특히 한국과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몇가지가 있다. 언제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해외 취업, 특히 나처럼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사무직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의외로 커리어 외길 인생은 걸림돌?

나는 패션 업계에서만 7년을 있었다. 알다시피 한국은 '외길 인생'을 권장하고 미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잦은 이직이나 직무 이동은 커리어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도 다른 직무에 대한 열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왔던 일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런던에 와서는 패션 업계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내가 해왔던 경험들과 나의 전문성이 장점이 될 수 있는 직무와 회사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리크루터들 마다 꼭 하는 소리가 내 경력이 너무 패션 쪽에 치우쳐 있어서 조금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미리 준비를 했던 질문들이라 대답을 하긴 했다만 한국에서와 다른 반응에 처음에 조금 당황했다. 여긴 그만큼 커리어에 정도(定道)는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내가 정말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와 업계, 직무가 마음에 든다면야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나처럼 다른 업계나 직무에도 관심이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이라도 더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 내가 커리어에서 어떤 것을 진짜 추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런던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2. 업계/직무 이동이 자유롭고 흔하다

영국에선 업계나 직무 이동이 흔하다. 실제로 런던에서 일하는 내 친구들 중에서는 직무 이동은 물론이고 업계까지 여기저기 들락거리는 친구들이 많다. 예를 들면 A 친구는 마케터를 하다가 지금은 회계 쪽으로 옮겼고 B친구는 백화점에서 세일즈를 하다가 지금은 테크 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한다.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예시들이 런던에는 내 주변만 해도 너무 많다. 특정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런던 구직 시장은 정말 열려있다. 단, 열려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프리 패스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토리를 빌드업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A 업계/직무에서 B 업계/직무로 가고자 하는 이유와 계기가 필요하고 그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나의 스토리가 충분하다면 런던은 오히려 우리의 도전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3. 모든 것은 링크드인(LinkedIn) 위주

여기는 모든 구직 상황이 링크드인을 통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링크드인 프로필이 정말 중요하다. 링크드인을 통해서만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많고 기업 홈페이지를 통해서 지원하더라도 링크드인 프로필 주소를 꼭 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헤드헌터들이 링크드인을 보고 다이렉트로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네트워킹을 위해서도 필수이다.


나는 예전부터 링크드인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워킹 홀리데이를 합격하고 본격적으로 런던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오히려 CV보다 링크드인 다듬기에 더 집중했다. 프로필 사진도 좀 더 프로페셔널 하게 보이게 위해서 전문 커리어 프로필 사진으로 새로 찍어서 교체하고 회사 동기, 선/후배, 직장 상사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영어로 추천서도 받아두었다. 이 추천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은근히 중요하고 나중에 면접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여기서는 직무 이력 말고도 관련 업계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소프트 스킬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다양한 직급의 인맥들에게 레퍼런스를 받아두는 것을 추천한다.



4. 인터뷰 과정이 진짜 길고 까다롭다

여기 와서 내가 한국에서 그동안 얼마나 쉽게 이직을 했는지 몸소 실감하는 중이다. 물론 회사 by 회사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최소 4단계 이상을 거친다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 채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국에서 경력직 이직은 빠르면 1-2주 만에도 채용이 결정되었었는데, 여기는 최소 3주이고 진짜 큰 대기업은 채용 확정까지 2달-3달까지도 걸리기도 한단다.


우선 1단계는 보통 서류심사 후 해당 기업 HR과 10분에서 길게는 30분 정도 폰 스크리닝(Phone Screening) 을 하는데, 서류에서 관심이 있는 후보자들을 추려서 인사팀에서 한 번 더 거르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해서 간략히 묻고 해당 포지션에 적합한지 판단 후 실제 면접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적어도 3-4명의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과 개별 인터뷰를 본 후에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기업도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로 치면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 채용 과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5. CV는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

여기는 이력서를 CV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Resume, 유럽에서는 CV) CV는 Word 파일(혹은 pdf)로 한 장 이내로 정리하는 것이 국룰인 듯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실 이력서가 형식에 가까웠고 자소서나 경력기술서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 여기서는 정돈된 CV 1장이 훨씬 중요하고 우리나라에 자소서에 해당하는, 커버레터를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사실 중에 하나는, 영국에서는 어떤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CV를 자동으로 걸러내는데, 그 프로그램이 CV에 적힌 단어들을 자동으로 수집해서 이 포지션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걸러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CV는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동화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의 CV는 애초에 기계에 의해 억울하게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Microsoft Word 파일 형태가 가장 적합하고 괜히 예쁘게 디자인한답시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혹은 텍스트 박스를 사용한 디자인이 가미된 CV를 만든다던가 하는 것은 되려 피하는 것이 좋다. 



6. 학벌, 유학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그동안 한국에서 학벌 덕을 봤던 사람이었다. 영국에 올 때는 당연히 한국에서의 학벌은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예 고려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항상 학교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은 받았었고 심지어 영국에서 교환학생 한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곤 했다. 여기에서 면접을 볼 때마다, 난 조금이라도 친근함을 조성하기 위해 항상 영국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으레 꺼내곤 했는데 여긴 영국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국 대학에서 공부를 한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이것도 업계, 직무, 경력의 유무마다 케바케일테고 영국 내에서도 좋은 대학 (예를 들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를 포함한 유수 대학들) 출신들은 당연히 혜택을 받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배경이 전혀 다른 외국인, 특히나 경력자 이직의 경우에는 학벌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영국에 오기 전에는 현지에서 잠깐이라도 유학을 하는 것이 해외 취업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지금 생각하면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석사 유학까지도 진지하게 알아봤기 때문에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내가 막상 와서 구직 활동을 해보니 유학 여부나 학벌보다는 내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즉, 나의 전문성과 스토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7. 회사 타이틀보다는 나의 전문성

한국에서 취준생일 때 나는, 첫 회사가 중요하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었고 '같은 노예라도 대감집 노예가 낫다' 등의 말도 우스갯소리로 많이 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회사의 네임 밸류가 정말 중요하고, 나도 첫 회사가 대기업이었는데 그 경력이 이후 이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모든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런던에서는 내가 어떤 '회사'를 다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결국은 이 후보자가 해당 포지션에 맞는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면접을 몇 번 보게 되니 내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성장했는지, 그리고 나의 경험과 전문성으로 우리 회사에 어떤 Value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훨씬 포커스를 두었다.


나처럼 한국에서 경력을 좀 쌓은 뒤에 해외에서 이직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어떤 회사에 다닐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이 회사에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내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곳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좋다. 나의 첫 회사는 업계 최고 대기업이었고 제일 오래 다닌 곳이지만 아직도 퇴사한 것을 내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여러 번 이직을 하면서 나만의 전문성을 키우게 되었고 지금 영국에서 직무를 바꿔서 도전을 하더라도 면접에서 오히려 '나 이거 잘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회사에서 내가 정말 성장을 하고 있는지 꼭 고민해 보길 바란다.



8. 연봉은 나의 가치, 당당하게 요구하기

한국에서는 직급/연차 별로 정해진 연봉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든 구조였다. 첫 회사였던 대기업 퇴사 후, 더 작은 외국계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대기업에서 받던 연봉을 맞춰줄 수 없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연봉을 깎은 적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어느 정도 포지션에 할당된 정해진 예산이나 '연봉 밴드'가 있긴 하지만 그 범위 내에서는 구직자가 어떻게 네고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에서는 연봉을 '네고' 한다는 의미보다는 회사에서 정해주는 연봉 체계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본인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연봉 네고하는 스킬에 대한 콘텐츠도 굉장히 많다. 런던에서 내가 느끼기에는 이전 연봉보다 더 깎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고, 구직자의 희망 연봉에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는 편이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Apply 단계나 1차 인사팀과 스크리닝 단계에서 보통 희망 연봉을 먼저 물어보고, 거기에 상호 합의를 하게 되면 전형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에서 아예 벗어난 후보자는 서류에서부터 채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희망 연봉을 높게 부른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한국의 그 '겸손' 미덕은 여기서는 정말 버려야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가치가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냥 당당하게 '내 가치는 이 정도인데 너네 감당할 수 있겠니?'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영국에서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있지만 그래도 내 능력과 가치를 후려치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기 때문에 내 요구사항을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거기에 동의한 회사들과 지금 면접을 보고 있다. 자본주의, 그리고 노동 시장에서의 나의 가치는 연봉이다. 나를 믿고 나를 진정으로 서포트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으니 내 능력과 가치를 믿고 그것을 인정해 주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

이전 06화 런던과 영국의 차이, 그리고 이방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