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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Dec 16. 2021

퇴사 통보를 했다. 저 워홀가요

진짜 착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



어느덧 경력 만 7년, 벌써 4번째 퇴사 통보지만 퇴사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특히 이번 퇴사 통보는 평소와는 남달랐다. 예전엔 더 이상 이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아서 지긋지긋했거나 어느 다른 곳으로의 이직이 확정되어서 홀가분한 마음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동안 정말 믿고 의지한 팀원들에게 퇴사 통보를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먼저 앞섰다. 나의 상황을 아는 지인의 찰떡같은 비유를 빌리자면 '진짜 착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라고.



그만큼 난 지금 회사, 업무, 특히 우리 팀에게 80% 이상으로 만족하고 있었고 (나머지 20%는 누구나 갖고 있는 회사 생활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고 하겠다.)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선 퇴사할 이유가 사실 전혀 없었다. 오죽했으면 손을 덜덜 떨면서 '이건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이자 선택이지 회사나 업무에 불만이 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운을 떼야 했다.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되어 퇴사를 하게 된다는 나의 말을 듣고, 함께한 동료, 파트장님, 팀장님 그 누구도 놀라거나, 붙잡거나, 일말의 참견도 하지 않았다. 덤덤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축하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리스펙트 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한다.' 등의 따뜻한 말들로 나의 불편함, 미안한 마음을 오히려 무색하게 만들었다. 



역대 나의 퇴사와 이직의 90%는 사람 때문이었고, 그동안 정말 인류애를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내가 인복이 없음이 틀림없다며 푸념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팀은, 팀워크는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도 분위기가 좋다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팀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매출 빼고 다 좋은 팀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정말 그랬다.)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팀이라, 회식 같은 사적인 모임은 거의 못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니 소소하고 재밌는 추억들이 정말 많다. '내가 회사 생활을 꾸준히 한다면 이런 팀 분위기에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를 비로소 실현시켜준 곳이 바로 지금의 팀인데 결국 내 발로 그만두는 상황이 오다니 인생은 참 웃기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이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 한편이 시리다. 나에겐 정말 헤어질 이유가 없는 '착한 남자친구'다. 나랑 헤어지고 잘 될 것 같냐(?)며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장밋빛 미래를 기꺼이 응원하게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희망 퇴사일은 1월 말로 통보를 했고, 이제 출국까지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가장 마음의 짐이었던 회사를 정리하고 나니,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싶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브랜드, 팀 그리고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나보다 훨씬 좋은 분이 얼른 나의 빈자리를 메꾸어주기를 간절히 빌어야겠다. 워킹 홀리데이를 지원할 때 나의 목표는 지금 회사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회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 팀원들과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한번 꼭 함께 일하고 싶다. 영국에 가서도 이런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모두들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앞으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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