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5년 회고

그리고 2026년 단 한 가지 다짐

by 오후세시

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이제 다 지나갔다. 원래 이맘때쯤에 늘 올 한 해 리뷰와 내년의 목표 정리 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내년엔 n권의 책을 읽고 주에 n번 운동을 하겠다 식의 다짐)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올해 단순히 무엇을 성취했고 내년에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나열하기보다는 올해 영국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돌아보고 내년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안주하지 않고 한계에 도전했다

2025년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큰 성과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 내 한계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워라밸 좋고 안정적으로 다니던 영국 첫 직장을 그만두고, 그와는 정 반대의 환경인 틱톡으로 이직을 했다. 재택이 자유로운 하이브리드에서 주 5일 출근으로, 평균 근속 5년 이상의 회사에서 8개월인 곳으로 왔다. 끊임없이 내 능력을 증명해야만 살아남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지만, 고생한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가장 깊은 성장을 이뤄낸 것 같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보면 대학 졸업 후 처음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했는데, 11년이 지난 이제야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이다. 이제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빛이 나는지 점점 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도 커져가고 있다. 4년 전 영국에 올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시작했고, 틱톡 내에서도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지 기대된다. 예전엔 무작정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경험들을 토대로 나를 더 단련하고 있다. 점처럼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내년에는 그 선들이 하나의 서사로 완성될 것 같다.



증명하려는 사람에서 기준을 세우는 사람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변화다. 예전에는 외부의 인정을 받으려,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동료나 친구 등 타인과 비교를 하며 나를 증명하려고 몰아세웠는데, 이제는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커리어에서도 단순히 타이틀이나 성과 위주의 선택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과 무엇보다 나답게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되었다. 그래서 틱톡으로 이직 후 심리적 부담감이 컸던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독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이 경험이 내가 그리는 미래에 분명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리어 이외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People Pleaser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려는 사람)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나보다는 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기분을 살폈고, 인정받길 원했다. 그게 영국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세일즈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더 심해져서 나를 갉아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증명하려기 보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우리 팀은 야근 문화가 굉장히 심한데, 그래도 나는 내 할 일만 다 하면 퇴근을 한다. 데드라인이 너무 촉박하거나 업무량이 과도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상사에게 이야기해서 개선하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팀의 분위기에 맞춘다거나 억지로 나를 갈아가면서 어떻게든 해냈을 텐데 말이다. 개인적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싫은데 남을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 예를 들어 내키지 않는 약속 같은 것들에서 이제는 나의 기분을 먼저 챙긴다. 나만의 기준을 점점 더 만들어 나가면서, 작은 변화지만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관계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30년 넘게 살던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어언 4년을 보내다 보니, 가장 힘들었던 건 인간관계의 변화였다.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물리적 거리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없기에, 이 거리감은 더 커질 거라는 생각에 막연한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30년 동안 쌓아온 모든 관계가 모두 사라지면 어쩌나 불안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관계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나도 달라지고 영국에 살면서 가치관도 바뀌다 보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부딪히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태도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이야기와 연결되는 내용인데, 내가 애정과 관심을 쏟을 사람들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친구 사이에도 서운한 일이 생기면 불편해도 바로바로 이야기했다. 그 결과가 다시는 보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고 나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친구들, 서운한 점을 털어놓으면 불편해지거나 멀어지는 대신 온 힘을 다해 그 관계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노력해 주는 친구들. 그렇게 나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아껴주며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아주 큰 행운이다. 그리고 이제 나의 모든 시간과 마음은 그 사람들에게 쏟기로 생각했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아쉽지만 인연이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더 이상 감정 노동을 무작정 감내하지 않게 되었고, 예전보다 관계에 대한 경계가 훨씬 명확해졌다. 모든 관계를 붙잡기보다 남겨야 할 사람과 흘려보낼 사람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인간관계는 훨씬 줄어들었지만,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졌고, 그게 오히려 나를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게 만들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한때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멀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인연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것도 괜찮다고.



2026년,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기

그리고 나의 2026년 다짐은 딱 하나다.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기. (아마 이 결심도 수십 번째 하는 듯하다.) 2026년은 100을 10번 하려기보다는, 하나의 100을 온전히 채우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동안은 모든 일을 다 100으로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 커리어도 100, 인간관계도 100, 사이드 프로젝트도 100, 결혼 준비도 100. 나는 한 명인데, 모든 역할을 100% 완벽하게 챙기려 했다. 내가 가진 물병은 하나인데, 내 앞에 놓인 모든 컵에 물을 가득 채우려 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오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2026년에는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2025년에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면 이제는 그 기준을 더 확고히 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할 차례다. 무엇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지, 무엇은 과감하게 내려놓을지 선택하는 연습을 계속하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들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때로는 70이나 80도 충분하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말해주려고 한다. 이제 그만 나를 몰아세우고, 좀 다독이면서 천천히 갈 생각이다. 2025년이 한계에 도전하고, 기준을 세우고, 관계를 정리하며 나를 단단하게 만든 해였다면, 2026년은 그렇게 단단해진 나를 좀 더 부드럽게 대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만큼, 이제는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고 싶다. 그게 진짜 성장이라고 믿는다.



겨울냄새 물씬 나는 런던 사진들

늘 저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구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6년 건강, 행복 포함 원하시는 바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내년 다짐에도 글쓰기는 늘 우선 순위에 있으니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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