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깬 딸아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엄마도 같이 가줄 수 있어?"
순간 눈이 번쩍 떠졌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엄마도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아빠한테도 같이 가달라고 말해야겠다" (아빠둥절)
"하늘나라에 가는 꿈을 꿨어?"
"응……"
아이는 어떤 꿈을 꿨을까? 이맘때 자기 전 아이는 종종 죽음에 대해 물었다. 사람은 끝이 있어? 내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는 끝나는 거야? 죽으면 더 이상 못 만나는 거야?
언제부터 죽음을 인지하게 됐을까……작년에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났던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나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경험을 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90살이 넘은 나이셨기에 증손녀도 보시고 장수한 삶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고 한 달쯤 후 돌아가셨다. 코로나로 인해 할머니 병실은 단 한 번 찾아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장례식에도 함께할 수 없었다. 할머니보다 연세가 더 많은 할아버지를 돌봐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지우도 어렸기에 할머니의 장례 기간 동안 내가 외갓집에서 할아버지와 지우를 돌봤다. 장마 기간이라 3일 꼼짝을 집에서 보냈다. 치매 증상으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아직 죽음을 모르는 아이 사이에서 슬퍼할 틈은 없었다. 낮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생활하다가 적막한 밤이 오면 할머니의 오래된 잠바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분명 오래전부터 봤던 옷인데 새 옷 같이 깨끗했다. 아껴입지 마시지…… 할머니의 장례를 겪으며 ‘내 부모도 언젠가 나를 떠나가겠구나’ 하는 현실을 자각했다. 1년 후 여름,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다.
언제부턴가 딸아이는 이유 없이 눈물을 터트릴 때가 많았다. 기분이 싸해서 보면 눈썹은 벌겋고 작은 눈망울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와 아빠도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아이에게는 적절한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 없이 우는 주기가 짧아질수록 나도 지쳐 갔다. 네이버에 ‘아이 울음’ ‘이유 없이 우는 아이’ 등을 검색했을 때 ‘소아 우울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는 그 후 서서히 감정을 회복해 갔고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 시간이 약, 육아가 힘들 때마다 다시금 되새기는 띵언. 섣불리 아이를 소아정신과에 데려가 상담도 한번 받았지만, 처방받은 약은 먹이지 않았다. 상담 치료를 기대하고 갔는데 다짜고짜 무서운 병명들과 약 이름을 나열해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싶었다. 나중에 좀 더 알아보니 내가 기대한 치료를 받으려면 소아정신과보다는 상담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에 갔어야 했다. 아마 영화 <인사이드 아웃 1>에서처럼 그맘때쯤 아이 마음속에 ‘슬픔이‘가 생겨난 것 같다. 이제는 진짜 슬픔을 아는 나이. 기쁨도 내 것인 것처럼 슬픔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누가 대신 슬퍼해줄 수 없이 오롯이 내가 체화해야 하는 슬픔. 3n살 성인인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요즘도 우리는 가끔씩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로 5살이 된 반려견 콩이를 보면서 한 번씩 죽음을 상기한다.
“콩이도 언젠가 무지개다리를 건널까?”
“그렇겠지……”
“너무 슬프다……”
“근데 있잖아, 나중에 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동안 못 만났던 콩이 엄마랑 아빠, 형제들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자. 우리가 콩이를 못 보는 건 슬픈 일이지만, 콩이가 보고 싶어 했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죽음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닐 거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 하늘 너머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다시 만났고,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났기를 바라며.
*
8살과 7살의 얼굴은 묘하게 다르다. "컸다"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묘한 차이. 작년에는 비어 있던 앞니 두 개가 자라 치열이 달라졌고 그래서 웃을 때 분위기도 달라졌다. ‘아이의 얼굴은 매일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성장 시기마다 얼굴의 인상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갓 태어났을 때는 아빠 판박이였다가 3~4살 때쯤에는 엄마의 이목구비가 드러나기도 하고, 조금 더 자랐을 때 다시 아빠의 분위기가 강해지기도 한다.
딸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내가 아버님을 낳았나?’ 싶을 정도로 남편의 유전자가 강해 보였다. 특히 아래로 쳐진 순둥이 같은 눈꼬리가 영락없이 남편이 것(?)이었다. 웃으면 그 눈매가 반달 모양이 되는 것도 꼭 닮았다. 어딜 가나 아빠 판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종종 아들로 오해받기도 했다. 내 눈에는 그저 귀여운 생명체였다. 누굴 닮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의 오랜 친구들은 딸아이에게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하긴 어쩌면 나보다 내 얼굴을 더 자세히 봤을 친구들이다. 내가 말을 할 때 얼굴, 음식을 먹을 때 얼굴, 울고 웃을 때 얼굴은 나보다 타인이 더 많이 본다. 그래서 나는 모를 그런 나의 인상과 표정을 친구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고 내 아이에게서도 그 모습을 캐치하는 게 아닐까. 아이의 얼굴에는 나와 남편의 시간이 담겨 있다. 유전자의 신비를 떠나서 우리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우리가 한 번씩 투영된다. 어떤 때는 아이돌과 사랑에 빠진 어릴 적 나의 얼굴이 보이고 어떤 때는 게임에 몰두해 심각해진 어린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요즘 아이에게서 가끔 한 번씩 낯선 얼굴이 보인다. 천진난만한 얼굴 대신 고요하게 고민하는 얼굴을 더 자주 본다.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보다 주위를 살피느라 바쁘게 돌아가는 눈동자가 더 눈에 익고 있다. 8살 소녀의 얼굴은 7살 때와는 묘하게 다르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얼굴도 있겠지. 더 많이, 더 자세히 봐 둘걸. 이제 아이는 아빠의 얼굴, 엄마의 얼굴이 아닌 자신만의 얼굴을 찾아가고 있다.
*
딸이 엄마의 감정을 흡수하듯 나도 딸의 감정을 흡수한다. 안 그럴 순 없을까. 엄연한 타인인데 스펀지처럼 감정을 흡수할 수 있을까. 아이의 생각이 커지고 취향이 넓어질수록 아이와 부딪히는 일이 종종 생겼다. 특히 아이의 친구 관계에 예민했다. 오늘은 누구랑 학교에 갔는지, 누구와 같은 팀을 했는지, 왜 그 친구들이랑은 안 놀았는지 등등. 사소한 친구 관계의 변화에도 과민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나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할 때가 있었다. 종종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차가운 눈빛, 비난하는 말을 내뱉은 적이 많다. 곧바로 ‘왜 그랬을까?’ 후회했지만 나도 정확히 내가 왜 심통이 났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가 친구 관계에서 상처받는 게 싫었다. 내가 대신해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내 아이만큼은 주눅 들지 않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어느 순간 나의 이런 마음과 행동들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성급한 짐작, 과잉 추론 등을 아이의 친구 관계에도 투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는 내가 아닌데.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언제까지 아이 앞길에 꽃길만 깔아줄 순 없겠지. 때론 진흙탕도 있고 가시밭길도 가야 할 텐데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도전의 기회를 내가 뺏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의 상한선을 ‘나’로 정한 채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이폰 메모장에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리스트를 적었다. 막상 적어 보니 어느 하나 마땅히 화낼 이유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저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통제되지 않아 방어 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아이한테만큼은 통제 성향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통제 성향이 아이에게 스며들기 전에 빨리 막고 싶었다. 그렇게 비슷한 상황에서 또 모진 말을 툭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이 리스트들을 복기했다.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친구 관계에 간섭하지 않기 나의 생각을 자주 설명하거나 설교하지 말자
취향 지적하지 말기 입고 싶어 하는 옷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자
미리 걱정하지 말기 걱정은 쉽게 전염된다. 나의 걱정을 아이에게 전염시키지 말자
내 핸드폰 만진다고 성질내지 않기 “엄마 핸드폰을 왜 가져가고 싶어?”라고 먼저 물어보자
잠자기 전에 구박하지 않기 꼭 몇 시까지 재워야 한다는 시간에 속박되지 말자
나는 이제 빠른 걸음에서 해방되고 싶다. 빨리 걷는 나 때문에 아이가 종종걸음 치지 않도록. 나는 이제 꼭 잡고 다니던 아이의 손을 놓으려 한다. 흙탕물이 튈까 봐 돌에 걸릴까 봐 안전한 길로만 이끌었던 그 손을. 너만의 속도로, 걷고 싶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 연재 중
육아를 하면서 느낀 단상들을 적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10년 차 엄마의 자아 성찰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