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의 성장

by 이예진


빨리 좀 커!

“아이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한 번도 공감한 적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아이가 크는 게 아까워서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엄마들의 글을 자주 본다. 그때마다 ‘나는 아닌데…’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빨리 걸었으면, 빨리 말했으면’ ‘빨리 커서 6~7살쯤 되면 말 잘 듣겠지? 제발 빨리 좀 컸으면.’ 내 속마음은 늘 이랬다. 내게 모성애라는 것이 있는 걸까?

육아에 정답은 없다지만, 주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최선의 해답을 찾고 싶다. 아이가 2살이던 2016년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육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육아 바이블로 불리는 몇 권의 유명 서적과 맘 카페, 개인 블로그에 올라오는 ‘~카더라’ 같은 정보가 전부였다. 나도 처음에는 맘 카페라는 곳을 가입해 육아 정보를 얻거나 다른 사람의 육아 일상을 엿보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른 환경, 다른 성격,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 금세 탈퇴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육아 정보도 일반화의 오류가 많은 것들이라 경계하는 편이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어릴 적 TV에서 즐겨 보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육아 전문가가 아이의 문제 행동을 분석하고 개선해 주는 프로그램. 다행히 예전 방송도 TV 다시 보기(당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보급되지 않아, 유료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했다)가 가능했다. ‘밥 잘 안 먹는 아이’ ‘잘 안 자는 아이’ 등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대단한 해결책을 얻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육아 정보를 검색하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육아 프로그램을 찾아본 것이 아니다. 실은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육아는 원래 어렵고,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한 마디. 흔한 말이지만, 꼭 필요한 말이다.


주수에 맞게, 나이에 맞게 아이가 잘 성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가 건강하게 커 나가는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람이 아닐까. 그런데 종종 아이의 기질이나 체질, 성격, 기호마저 남의 아이처럼 되길 바랄 때가 있다. ‘누구는 잘 먹는다는데…‘ ’누구는 혼자서도 잘 잔다는데…‘ ’누구는 친구도 잘 사귄다는데…‘ 등. 비교와 저울질, 열등감은 육아를 지치게 한다. 나의 아이를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난무하는 육아 정보와 전문가의 솔루션 사이에서 정보 리터러시가 꼭 필요하다. SNS나 커뮤니티에 의존하는 육아는 지양하는 편이 낫다. 아이 배설물 사진을 올리면서 ”어디가 아픈 걸까요?“라는 글을 올릴 시간에 즉시 병원에 데려가는 게 맞다는 얘기다. 아이가 잘 안 먹는다며, 걸음마나 말이 늦다며 인터넷에서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거나 전문 기관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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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할 수 있어! 워킹맘

우연한 기회에 퇴사한 회사에서 재취업 오퍼를 받았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2년 가까이 경력이 단절된 상태여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17개월이 된 아이를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보냈다. 탄력 근무제 덕분에 10시 반까지 출근할 수 있었지만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등원시킨 후 전철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조급했다. 깜빡이는 초록불에도 절대 안 뛰던 내가 이제는 어디서든 뜀박질이 기본이다. 그럼에도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가 많았다.

작은 출판사에서 월간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각 업무가 세분화되어 팀별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공동의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이라 팀워크가 핵심이다. 소통과 단합력이 중요해 업무 시간 외에도 직원끼리 뭉치는 일이 많다. 또한 잡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감 엄수다. 결혼 전에는 마감 주간이면 잔업과 야근이 당연했고, 철야 후 아침에 퇴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절대 안 된다. 다음날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입사하면서 회사의 배려로 4시 반 조기 퇴근을 허락받았다. 늦어도 6시까지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잔업과 야근도 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직원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의 나는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주어진 일만 하기에도 빠듯한 기분. 나서지 말자는 게 신조가 됐다.

4시 10분쯤부터 중요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슬슬 퇴근 준비를 한다. 그러나 회사의 업무 시계는 가장 바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모두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집중해 있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깨는 나의 한 마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고 마감에 지쳐 있는 후배들의 버석한 얼굴을 뒤로하고, 전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제일 늦게 출근해서 먼저 퇴근하는 선배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지할 틈도 주지 않고 매정하게 가버리는 선배를, 선배라고 생각할까. 그런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켜켜이 쌓여 갔다. 동시에 마음 한 편으로는 회사의 유일한 기혼 여성이자 워킹맘으로서, 여자 후배들이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한 번쯤 나를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 선배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작은 동기부여가 됐으면 했다.

워킹맘으로 살면 종종 이런 오해를 받는다. “어차피 남편이 버는데, 살살 일해도 되지 않아?“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화가 난다. 육아가 답답해서 용돈 벌이로 일하는 게 아니다. ‘꿈’이나 ‘자기 계발’ 같은 말은 거창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은 맞다. 여자는 결혼 후에 중요한 선택지에 놓인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정답은 없다. 더 나은 선택도 없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선택지를 고른 이유는, 나중에 아이에게 ”너를 낳았지만 엄마는 어느 하나 포기한 것이 없다“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포기한 것이 한 두 개쯤은 있을 테다. 어떨 때는 아이를 핑계로 일부러 포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아이를 낳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살아갈 세상에는 성별로 인해 포기하는 일이 지금보다 줄었기를 바라며.

숨차게 뛰어서 겨우 퇴근 전철에 몸을 싣는다. 역에서 미친 듯이 뛰어가는 아줌마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워킹맘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껏 나는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필사적으로 뛴 적이 있었나?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뛰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저 언제나 환한 얼굴로 나를 향해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를 1초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뿐. 이런 것도 모성애로 쳐 주나? 그렇다면 나도 점점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여전히 엄마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아직은 ‘엄마’의 ‘ㅇ’ 자도 겨우 알 것 같지만, 엄마이기 전의 나보다 지금 내가 좋다. 훨씬! 말도 안 되게!



미래에서 온 육아일기

매주 금요일 발행


육아를 하면서 느낀 단상을 적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10년 차 엄마의 자아 성찰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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