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경력 10년.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는 육아 일기를 쓰고 있다. 아이폰 메모장에 틈틈이 적어둔 한탄에 가까운 기록들이 이 연재의 주춧돌이 됐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첫 일 년의 기록이 없다. 너무 힘들어서 무언가 끄적일 힘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짧은 메모라도 남길 걸, 후회스럽다. 이제나마 10년 전의 기억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상기해 본다. 아마 지금까지 기억하는 일이라면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20대 동갑내기 커플이던 나와 남편은 준비도 없이 갑자기 부모가 됐다. 육아는 물론 결혼조차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을 누리기도 전에 아이가 태어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6개월이었다. 출산하고 뒤늦게 내가 아이를 갖기 어려운 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이는 정말 하늘이 주신 선물이구나 느꼈다.
진짜 선물처럼, 나의 생일에 아이가 태어났다. 예정일을 5주나 앞두고 조산했다. 다행히 아이 건강에 이상이 없어서 출산할 수 있었다. 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조리원 퇴원 날, 모세 기관지염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아이만 병원에 두고 3주 만에 집에 돌아왔다. 괜찮은 척했지만, 친정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혹시 세상에 너무 빨리 나와서 아픈 건 아닐까?’ ‘임신했을 때 잠깐 넘어진 것 때문에 조산한 걸까?’ 온갖 자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오래 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엄마에게는 평생의 죄책감이라는 것을. 이후 아이는 건강히 잘 크고 있지만, 가끔씩 잔병치레를 할 때면 ‘빨리 태어나서 그런가?‘하는 모진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나중에야 모세 기관지염의 발병 원인이 조리원의 위생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는 3일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 보니까 더 작은 아기…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 전의 눈물이 미안함의 눈물이었다면 이번에는 무서움의 눈물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 작은 생명이 나에게 온 걸까? 쌔근쌔근 자는 아기 옆에서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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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돌보기는 규칙적인 일과의 반복이다. 우유 먹이기, 재우기, 기저귀 갈기, 씻기기의 무한 반복. 아기가 잠든 시간에는 젖병을 닦고, 배냇저고리를 세탁하고, 욕조를 청소한다. 언뜻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이 루틴에는 엄청난 변수가 숨어 있다. ‘우유를 먹인다’는 입력값에는 ‘우유를 먹는다’는 출력값이 나와야 하는데, ‘우유를 거부한다’는 변수가 나타난다. ‘잠을 안 자고 운다’ ‘기저귀를 갈았는데도 운다’ ‘씻기는데 운다’ 등등 변수의 연속. 아이가 울면 초보 엄마의 사고는 정지된다. 지난 이십여 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 경험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쓸모 인간이 된 기분이다. 일찍 결혼한 탓에 주변에 물어볼 선배 엄마가 아무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퇴사한 전 직장 상사의 아내 분께 SOS를 청한 적도 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육아 스트레스는 절정에 다다랐다. 좋은 고기와 유기농 채소로 매일 건강한 이유식을 만들었지만 아이는 입에 들어가는 족족 뱉기 일쑤였다. 손으로 비비고 묻히고 급기야 세수까지. 이유식을 만든 나의 노력과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 나의 계획을 무참히 짓밟는 해맑은 아기 앞에서 매일 무력감이 들었다.
계획+통제+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나에게 육아는 넘어설 수 없는 강적이었다. 당시에는 MBTI도, 통제 성향이니 계획형이니 이런 말도 몰랐다. 내가 어떤 성격인 줄도 모른 채 그저 너무 모자란 엄마라고 자책만 했다. 수학 공식마냥 일반화된 육아 이론을 맹신하고 아기를 껴맞추려고 했으니, 돌이켜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얼마나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는지, 다행히 지금은 안다. 육아가 너무 어렵다면, 스스로 육아의 난이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정답을 정해 놓고, 아기가 거기에 맞춰지길 바라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봐야 한다.
이제껏 나는 실패가 두려워 허들을 낮춘 채 적당히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공부에서도 일에서도 ‘이 정도면 잘했어’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며 실패하지 않을 선택만 골라 왔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면서 무수한 실패를 겪었다. 분유 고르기 실패, 분리 수면 실패, 단유 실패, 통잠 재우기 실패, 공갈 젖꼭지 끊기 실패 등등.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실패가 익숙한 삶이 됐다. 그러는 사이 내게는 조금씩 변수 면역력이 생겼다. 나를 망치러 온 줄 알았던 변수가 나를 구하고 있었다. 실패에 상처받을 나 자신이 가여워 꽁꽁 싸매던 껍데기를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내고 있었다. 실패를 온몸으로 환대하고,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 이런 뚝딱이 초보 엄마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봐주는 아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매주 금요일 발행
육아를 하면서 느낀 단상을 적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10년 차 엄마의 자아 성찰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