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의 프롤로그
현재를 살면서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스마트폰 갤러리 속 지난 사진을 보며 ‘이때 행복했는데…’라고 회상하거나, 몇 개월 뒤 떠날 여행을 생각하며 ‘그때 행복하겠지”하고 기대할 때가 월등히 많다. 행복은 과거와 미래에 더 많다. 그런데 행복은 입 밖으로 내뱉거나 머릿속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어쩌면 이미 곁에 있다. 영화를 본 뒤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평론가의 글을 찾아보며 작품을 깊이 탐닉할 때, 좋아하는 아이돌의 무대 영상이나 직캠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때, 한적한 미술관에서 오롯이 작품과 마주하고 있을 때 잠시 온 우주의 시간이 나를 위해 멈춘 것 같다. 이내 현실로 돌아오지만 짧게나마 그런 순간들을 일상 곳곳에 심어 두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숨통이 된다. 나의 숨통을 틔우게 하는 것들. 디깅은 내게 그런 의미로 존재한다.
참으로 평범한 인생. 현실 도피처가 필요할 만큼 숨 막히는 삶은 결코 아니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지극히 순탄한 삶. 그래서 지루하고 심심한 삶. 일상에 활기가 넘치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들을 동경했다. 무리를 이뤄 예술적인 활동을 하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교의 동아리 문조차 두드려 본 적이 없다. 친구와 극장에서 보는 영화보다 집에서 혼자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동호회나 모임에 나가 인맥을 쌓는 일보다 트친, 인친과의 소통이 훨씬 건설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바운더리가 너무나 극명해서 누구든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정해진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갈 뿐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사람은 늘 어렵고 무리에서 살아가는 것도 잘 맞지 않았다.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할 때 가장 심신이 편안한 내향형 인간.(MBTI 과몰입러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마음을 두었다. 이를테면 TV 속 연예인, 스크린 속 이야기, 액자 속 세상,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보는 세계. 내 마음대로 마음껏 좋아해도 되는 존재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이상적인 바운더리가 유지되는 관계. 한 걸음 물러나 멀리서 흠모할 때가 가장 행복한 ‘덕후의 묘미’를 일찍이 맛보았다. 비록 우물 안 일지라도, 우물 밖으로 나갈 용기는없을지라도 우물을 깊게 파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안 파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파 본 사람은 없다는 ‘덕후의 삽질‘. 그 손맛(?)에 빠져 아이돌에서 음악, 영화, 잡지로까지 끝없는 삽질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N년차 프로 삽질러, 프로 덕후, 프로 디깅러가 됐다.
여러 우물을 파다 보면 이 우물에서 저 우물로 이어지는 나만의 연결 통로가 생기기도 한다. 영화와 음악, 영화와 패션, 음악과 전시 등 좋아하는 것들이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교차되고 연결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이탈리아의 80년대 패션을 파기도 했고, 비틀스 음악을 디깅 하면서 그들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를 섭렵하기도 했다. 나의 디깅도 재밌지만 남들의 디깅을 엿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어느 영화 덕후는 거울이 나오는 영화 속 장면만 모아서 소개하는 채널을 운영하고, 고가구를 디깅 하는 지인은 희귀한 피스들을 직접 보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하나의 분야 안에서도 저마다 좋아하는 방식, 즐기는 방식이 각양각색이다. 제한도 한계도 없는 무궁무진한 디깅의 세계. 돌이켜보면 지금 좋아하는 것 중에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좋아했던 것이 많다. 13살 때 처음 좋아한 god의 노래를 요즘도 찾아 듣고, 18살 때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매년 한 번씩 다시 꺼내 보는 인생 영화다. 25살에 산 빈티지 가방은 당장 어제도 들고나갔다. 한 번 시작한 디깅은 오래, 깊게 지속한다. 그렇게 나의 오랜 취향들이 이제는 신체 일부 마냥 몸과 마음 곳곳에 배어 있다. 심장이 가슴을 뛰게 하고 뇌가 생각을 하게 하듯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두하는 마음은 “덕분에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라고 긍정하게 한다. 정지혜 작가의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의 내용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과연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나에게 어떤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싹튼 수많은 줄기와 가지에 적절한 햇빛과 바람, 물만 잘 준다면 언젠가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는다.
혼자 한 우물을 파다 보면 머지않아 알게 된다. 이런 우물을 파고 있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가 더 깊게 팠는지, 많이 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 우물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우물의 깊이나 개수에 관계없이 우물을 파는 삽질의 재미는 공평하니까. 무언가 깊이 파 본 사람만 아는 희열, 때로는 그 속에 홀로 파묻힌 것 같은 적막, 그럼에도 삽질을 멈추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좋아서’다. 그 마음을 알기에 누군가의 디깅을, 덕질을, 과몰입을 응원한다. 고등학생 때 뮤지컬을 좋아하던 모범생 친구가, 사실 자기 꿈은 뮤지컬 배우라고 넌지시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나는 잘 모르는 뮤지컬 배우를 알려주며 그 사람처럼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꿈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 친구의 이름이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눈을 빛내며 자랑하던 그 배우는 또렷이 기억한다. 가끔 TV에서 그 배우를 볼 때마다 그를 동경하던 꿈 많은 소녀를 떠올린다. 연예인이나 예술 작품, 음악, 영화, 패션 등 어떠한 대상은 때로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빌어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는다. 탐조를 시작했다며 사랑에 빠진 얼굴로 새 자랑을 하던 플레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덕질을 시작한 초보 엄마 디그다. 이제 강가에서 노니는 새들을 볼 때면 플레이가 먼저 떠오르고, 아기를 돌보는 엄마들에게서 디그다의 얼굴을 본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플레이의 새 사진과 디그다의 육아 스토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오늘 하루 행복했겠구나.”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늘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 행복.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미처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 곁에 늘 현재 진행형 행복이 머문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우물을 판다. 좋아서!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 발행
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