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캠핑
10여 년 전 카메라 매거진 막내 기자 시절, 당시 출사 기사를 담당하고 있어서 매달 ‘캠핑+출사’를 주제로 연재 기사를 작성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기사는 아니었고 당시 광고주였던 캠핑 업체가 연계된 이른바 ‘애드버 콘텐츠‘였다. 선배들은 카메라 관련 굵직한 기획 기사, 중요 브랜드 취재 기사 등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비교적 힘이 덜 들어가는 출사 기사는 막내 기자의 몫이었다. 캠핑장을 섭외하고 취재날 해당 캠핑장을 방문해 당일 캠핑을 즐기며 출사(?)도 겸하는 기사. 그러나 주요 목적은 캠핑 장면에 광고주의 캠핑 용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것. 당일 현장에서는 캠핑이나 출사를 즐기는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어떻게 하면 광고주의 텐트나 침낭, 아웃도어 의류를 멋지고 그럴싸하게 찍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다.
당시 취재에는 나를 비롯한 선배 기자들과 광고 담당 영업부 직원이 함께했다. 선배들은 담당 기사가 아니니 놀러 가는 마음으로 흔쾌히 함께 가 주었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는 기사 걱정뿐이었다. 캠핑에 챙겨가는 장비는 모두 광고주에게 협찬받은 제품들. 고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초면인 물건 되시겠다. 텐트, 침낭, 화로대 모든 게 낯설었지만 선배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그림(?)은 뽑았다. 매달 캠핑을 다니며 기사를 쓰다 보니 텐트, 타프의 사용법부터 전문 용어가 가득한 각종 사양까지 꾸역꾸역 습득하게 됐다. 하지만 탈고 후에는 다시 기사를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도 심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이어지던 캠핑과의 인연은 퇴사와 함께 끝이 났다. ‘아마도 내 생애 캠핑은 다신 없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그랬던 내가 10년이 지난 지금, 전국 곳곳으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캠핑을 다니고 있으니 정말 한 치 앞을 모를 인생이다. 발단은 이랬다. 4~5년 전 당시 아이가 한창 말을 안 듣던 시기라 남편과 나의 육아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다. 아이가 잠든 밤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 밤에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남편은 컴퓨터 게임으로,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각자 짧은 일탈을 즐기는 것뿐. 집이 최고의 안식처인 나와 달리 남편은 집에 있으면 메마른 식물처럼 생기를 잃었다. 그럴수록 혼자만의 시간에 더 몰두했고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증세는 흔한 대상 포진. 그런데 그 발병 부위가 매우 드문 귓속이었다. 발병 부위 주변으로 얼굴 한쪽이 수포로 점령당하고 해당 귀의 청력이 저하됐다. 게다가 수포가 생긴 왼쪽 얼굴에 마비가 와서 람세이헌트 증후군을 앓았다. 한때 저스틴 비버의 희귀병으로 알려졌던 증세다. 단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담담했는데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바깥 외출을 꺼렸던 나 대신 남편은 쉬는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하루는 집에 돌아온 남편의 손에 캠핑 의자가 들려 있었다. ‘오다 주었다’ 느낌으로 멋쩍은 듯 의자를 펴면서 “비싼 거 아니야~”하던 남편의 얼굴. 사람이 없는 곳으로 콧바람을 쐬고 오자는 남편의 배려가 우리의 첫 캠핑이 됐다.
남편은 아끼던 컴퓨터 장비들을 하루 만에 팔아치우더니 첫 캠핑을 위한 장비를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첫 캠핑으로 들뜬 남편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캠핑 당일날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원래의 나라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구실이 생겼다고 좋아했겠지만 그동안 장비를 꾸리느라 발품 팔던 남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캠핑장으로 차를 모는 남편의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센 빗방울을 힘차게 걷어내는 와이퍼의 리듬감에 왠지 모르게 흥분됐다. 한 치 앞을 몰라야 더 재밌는 게 캠핑의 묘미라는 것을 우리는 그날 벌써 알아버렸다. 원터치 텐트 안에 아이를 (가)두고 온몸으로 폭우를 맞으며 타프를 설치했다. 비도 오는데 타프 설치도 처음이라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 어처구니가 없어서 터지는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비를 흠뻑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어쩌면 처음이었다. 비를 홀딱 맞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재밌구나. 손에 쥐고 있던 갖가지 경우의 수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상들을 놓아버리니 오히려 뭐든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0년이 지나 비로소 진짜 캠핑의 맛을 알아버린 게 조금은 억울했지만.
머지않아 우리에게 ‘장비병’이 도졌다. 캠핑에 입문하면 으레 겪는 수순이지만 하나에 빠지면 끝을 봐야 하는 남편의 성격에 장비병이 더해지니 장비 욕심이 꺼질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점심 값을 아껴가며 원하는 장비를 사기도 했고, 희귀한 장비가 중고 장터에 올라오면 새벽에도 차를 몰고 거래하러 갔다. 궁금한 장비는 직접 만져보고 써봐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은 꼭 손에 넣고야 만다. 한동안 대문 앞에 매일 택배가 쌓였다. 그중 절반 이상은 다시 상자에 싸여 우리 손을 떠나갔다. “그만 사!”라며 잔소리를 달고 살았지만 사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력만큼은 부러웠다. 갖고 싶은 물건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고민하는 내게는 즉시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저 손가락이 부러웠다. 그렇게 수많은 장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남편은 점차 캠핑 고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결코 비싼 장비가 다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장비는 분명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 한 손에 들 수 있는 경량 의자가 있다면 바다나 숲 어디서든 잠시 쉬어갈 수 있고, 따뜻한 겨울 침낭이 있다면 설경 속 캠핑도 현실이 된다. 좋은 장비는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게 돕고,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든든한 매개가 된다.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지금의 장비들 덕에 자연과의 잊지 못할 순간도 많이 남겼다. 산능선을 타고 흐르는 바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도 하고, 눈밭 위에서 더없이 따뜻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주로 방구석에서 디깅이 이뤄지는 나와 달리 남편은 숲과 호수, 바닷가 등 자연 안에서 힘을 얻었다. 덕분에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외향력(?)이 쌓여가고 있다. 꼭 근사한 경치가 아니더라도 한적한 자연 속에서 편안한 사람들과 보내는 하룻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
캠핑장에서는 모든 일을 남편이 주도한다. 텐트나 타프를 설치하는 힘쓰는 일부터 버너, 숯불, 난로 등 불 쓰는 일까지 남편의 손을 거쳐야 완성된다. 남편은 캠핑만 오면 엉덩이가 부쩍 가벼워진다. 집에서는 대부분 집안일을 내가 주도하고 남편이 보조한다면 캠핑장에서는 정반대가 된다. 나는 J형, 남편은 P형 인간이지만 캠핑에서는 우리 모두 P가 된다. 계획도, 통제도, 걱정도 없이 오늘을 산다.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하루를 산다. 덕분에 일상에서 짊어졌던 책임감으로부터 몸도 마음도 해방된다.
모든 게 평화로울 것 같지만 4여 년 간 캠핑을 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대형 텐트를 처음 피칭하는 날이었는데 당일은 손과 귀가 금방이라도 얼 것 같은 한파였다. 남편 키보다 큰 텐트를 둘이 낑낑거리며 설치했지만 폴 방향이 자꾸 틀리고 플라이 시트가 맞지 않는 등 자잘한 실수가 계속됐다. 추운 날씨에 텐트는 안 처지지, 어린아이는 2시간 가까이 오들오들 떨고 있지, 잔뜩 예민해져서 절로 큰 소리가 나왔다. 한파보다 심한 우리의 냉기가 느껴졌는지 위 사이트에 있던 캠퍼 분이 “잠깐 몸 좀 녹이세요.”라며 커피를 건넸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남편도 나도 정신이 바짝 들었다. 캠핑장 가서 싸우면 서로 피해 있을 곳이 없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리고 춥고 배고프다. 뭐 하나 이득되는 게 없으니 그 후로 우린 절대 싸우지 않는다. 강렬한 싸움 한 번이 더 강한 교훈을 남겼다. 그날 이후 철저히 대장(남편)과 조수(나)의 위치에서 맡은 바를 다하고 있다. 집을 짓는 일부터 잠자리를 만드는 일,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일 등 모든 것을 오롯이 우리 손으로 해내야 한다. 내가 힘든 만큼 상대는 편해진다. 이 말을 늘 염두에 두면 캠핑 가서 싸울 일은 없다.
남편의 취향으로 시작된 캠핑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취향을 갖는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것. 취향을 함께한다는 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혼자서는 가지 않을 길에도 발을 디딜 용기가 생긴다. 자연에 있을 때면 익숙한 일상에서는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모도 본다. 집에서는 내 입맛대로 통제하던 것들도 자연에 있으면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없게 된다. 그저 시간이 가는 대로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우리를 던져 놓는다. 캠핑을 다녀오면 집이 참 소중해진다. 그러다 또 일상이 권태로워지면 다시 고생길을 나선다. 아마 혼자였다면 절대 몰랐을 삶. 남편의 취향이 10년 후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기대해 봐도 될까?
매주 목요일 발행
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