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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 숨 The Gardener(2019)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다.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다. 폭력은 관용과 순응이라는 먹이를 먹으면서 점점 공룡이 되어 가는 괴물


어렸을 때 부모에게 당한 폭력의 경험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이 경험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이나 편견으로 작용한다.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리라 다짐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말썽을 피웠을 때 손찌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시작부터 어린 다빈은 아버지의 폭력에 무뎌져 그것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인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화단에서 누군가의 손이 올라오며 자신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는 또 다른 아버지가 나타나서는 원래 아버지를 자기가 있던 화단에 집어넣고 입을 테이프로 봉인한다. 그리고 다빈에게 꽃을 선물하는 새로운 아버지, 멍든 다빈의 얼굴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다빈의 이 새 아버지가 너무 좋지만, 원래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흙으로 덮는다. 어린 다빈의 아버지 무차별 폭력에 대항하는 최초의 반향이다. 원래 아버지의 숨소리에 다빈은 숨을 못 쉴 정도로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새 아버지는 원래 아버지의 흙을 덜어서 숨을 쉬게 해준다. 그러자 숨을 쉬는 다빈은 멍하니 원래의 아버지를 보다가 테이프로 다시 입을 막는다. 


어릴 적 봤던 TV 프로그램 중에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Twilight zone)이 있었다.

드라마는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입양할 동물을 선택하듯 자기 부모를 버리고 다른 부모를 택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봤음에도 이것이 세상의 비밀스럽고 음산한 모습 인가도 싶어 여운이 꽤 갔었다. 연출은 극 전반에서 상투적인 요소들을 대체할 무언가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는 듯했었는데 표현이 거칠지 않고, 스타일리쉬 했다. 또, 배우들의 에너지가 관객에게 많이 다가와 관객들의 집 중도가 높았고, 배우들의 소리와 움직임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듬어져 있었다, 이 영화도 그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가 어느 날 자기에는 똑같은 아버지가 나타나 어느 아버지를 선택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진다. 


폭력자는 폭력이 마치 피해자의 잘못에 의한 것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들 변명한다. 스스로 폭력을 사랑의 행위로 정당화하는 이들은 점점 폭력에 중독되는 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은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크고,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욕구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사랑을 시험해보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정원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묻혀 있고 자라나기도 한다. 우리의 내면에도 다양한 감정과 시련들이 묻혀 있고, 자라나고 있다. 타인에 의해 정원이 짓밟힐지라도 그 정원의 주인이 우리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주인공 다빈의 아버지는 폭력이 습관이 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흔히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빈도 성인이 되면 아버지와 같이 폭력적인 사람이 될까? 영화 중반, 감독은 겉모습은 소년의 아버지와 닮았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새 아버지를 등장 시킨다. 다빈의 미래 모습이라고 느꼈다. 다빈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라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적어도 그가 폭력을 폭력으로써 인식하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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