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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 영화, 그 매혹적인 '거짓'에 대하여

인형은 울지 않는다. Dolls Don’t Cry (2017)

인형은 울지 않는다. Dolls Don’t Cry (2017)

영화, 그 매혹적인 '거짓'에 대하여


종이 인형으로 가득한 집이 있다. 남자는 토끼 인형으로 애니메이션 작업하며 밤을, 여자는 소품을 만들고 망가진 토끼 인형을 수선하며 낮을 보낼 뿐 둘은 서로 마주하지 않는다. 무료한 듯 담담한 일상, 하나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남녀를 이어준 건 불현듯 나타난 '낯선 이'다.  


벽장 속에서 남녀를 훔쳐보다가 결국 여자에게 발견된 사람 크기의 종이 인형. 움직이긴 하나 피부색은 커녕 동공조차 없던 그녀는 여자의 붓칠 몇 번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여자의 일상을 공유한다. 함께 노래를 듣고 토끼 인형을 만져보다가 홀로 잠들어 있는 남자의 방문을 여자가 직접 열어 보는 데서 영화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남녀는 서로 스친다.


다음 날, 많이 망가진 토끼 인형을 수선하는 대신 대체품을 만들어낸 여자는 벽장 속 그녀에게 새 신발과 옷을 선물하고, 그녀와 함께 놀다가 잠든 여자를 깨운 건 다름 아닌 남자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둘은 처음으로 함께 식사하고, 함께 일한 뒤 아주 내밀한 관계를 맺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조금은 묘한 멜로에 불과한 영화는 여자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며 전혀 다른 장르가 된다.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낸 다음 날, 욕실에서 빗질하던 여자의 손목이 그대로 팔에서 떨어져 나간 것! 영화 자체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인 만큼 인형을 만드는 남자와 여자의 본체 역시 종이 인형인 걸 묵인해왔던 관객마저 이 대목에선 충격에 휩싸인다. 


토끼 인형을 수선할 때처럼 여자가 태연하게 제 손목을 팔에 붙이는 걸 보며 "내가 지금 무얼 본 거지?" 의아해지는 거다. 모두가 종이 인형인 걸 알면서도 이해하기 편하도록 주연인 남자와 여자는 '사람'으로 인지해왔던 것이 무너지며, 주연들의 정체성 역시 '종이 인형'으로 전락한다. 


흥미를 돋우기 위해 필자는 여기서 잠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겠다. 종이 인형임이 들켜버린 남녀의 다음 컷은 무엇일까, 벽장 속 그녀는 혹시 여자의 손목이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지 않을까. 으레 그러려니 여겼던, 등장인물에 대한 착각이 무너져 버린 시점에서 이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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