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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명 Jul 28. 2018

경주의 낮 그 이후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 下

3박 4일의 경주에 관하여

메밀꽃은 아니었지만 연꽃단지는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 했다.

2. 경주의 낮 그 이후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밤이 가까워질수록 경주는 마치 죽은 도시 같다. 경주는 김승옥 작품 속 '무진' 같기도 하고, 흰 연꽃이 월지의 연꽃단지는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도 한다.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이유로, '월지'라는 이름이 붙은 곳.

홀로 뚜벅이 여행이 힘들 때가 있다.(더군다나 대구보다도 더운 38도 폭염 속에선 더더욱). 여유롭고 행복하지만 가끔 외롭다. 길을 잘못 들어도, 버스가 30분 넘게 안 와도 탓할 곳이 없다. 오직 내 책임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반작용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ㅡ이건 일종의 정신승리일 수도.

낮 이후 가장 기묘한 느낌을 준 곳이었다.

둘 이상의 관광객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유적과 유물을 이야기하며 때론 날씨에 투덜거릴 때, 난 멈춰진 경주를 찍고 홀로 감탄하고 조용히 땀을 닦는다.

반대로, 이곳에선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나 또한 타인에게 모르는 사람이라 더 많은 사람들과 말하기도 한다. 특히 첫날 묵은 숙소와 둘째 날 불국사엔 유독 스페인 여행객이 많았는데, 되도 않는 영어가 적당히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소통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만난 여행객들, 경주주민만 아는 맛집과 박물관 등 이곳저곳 데려다 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 20분 넘게 걸으며 찾아간 식당에서 덥다며 아메리카노에 얼음 듬뿍 담아 꽁짜로 주시던 사장님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ㅡ이 식당은 경주에 또 가면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영화 <경주>에서 인용됐던 한시가 있다.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 한 조각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이곳에선 내일이 되면 어제의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한없이 맑고 신비로운, 참 이상한 곳이다. (끝)


18.07.25 - 18.07.28


영화 <경주>에 삽입된 중국의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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