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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경주의 낮 그 이후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 下

3박 4일의 경주에 관하여

by 진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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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7-16-00-52-308_deco.jpg 메밀꽃은 아니었지만 연꽃단지는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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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주의 낮 그 이후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밤이 가까워질수록 경주는 마치 죽은 도시 같다. 경주는 김승옥 작품 속 '무진' 같기도 하고, 흰 연꽃이 월지의 연꽃단지는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도 한다.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이유로, '월지'라는 이름이 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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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뚜벅이 여행이 힘들 때가 있다.(더군다나 대구보다도 더운 38도 폭염 속에선 더더욱). 여유롭고 행복하지만 가끔 외롭다. 길을 잘못 들어도, 버스가 30분 넘게 안 와도 탓할 곳이 없다. 오직 내 책임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반작용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ㅡ이건 일종의 정신승리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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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7-15-53-55-990_deco.jpg 낮 이후 가장 기묘한 느낌을 준 곳이었다.

둘 이상의 관광객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유적과 유물을 이야기하며 때론 날씨에 투덜거릴 때, 난 멈춰진 경주를 찍고 홀로 감탄하고 조용히 땀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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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곳에선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나 또한 타인에게 모르는 사람이라 더 많은 사람들과 말하기도 한다. 특히 첫날 묵은 숙소와 둘째 날 불국사엔 유독 스페인 여행객이 많았는데, 되도 않는 영어가 적당히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소통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만난 여행객들, 경주주민만 아는 맛집과 박물관 등 이곳저곳 데려다 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 20분 넘게 걸으며 찾아간 식당에서 덥다며 아메리카노에 얼음 듬뿍 담아 꽁짜로 주시던 사장님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ㅡ이 식당은 경주에 또 가면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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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주>에서 인용됐던 한시가 있다.

'人散後, 一鉤新月天如水'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 한 조각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이곳에선 내일이 되면 어제의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한없이 맑고 신비로운, 참 이상한 곳이다. (끝)


18.07.25 - 18.07.28


Screenshot_20180728-214509_Google.jpg 영화 <경주>에 삽입된 중국의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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