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널 쇼퍼>의 시퀀스 분석
1. 엇갈린 시선
2016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의 영예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에게 돌아갔다. ‘칸이 사랑하는 거장’이란 별칭답게 그는 ‘차가운 물’(1994)부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 등 칸영화제 통산 10회 초청을 받아 이번 제69회 칸영화제의 ‘퍼스널 쇼퍼’(2016)로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평단의 호평과는 달리 관객들 사이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퍼스널 쇼퍼’가 경쟁 부문 상영작으로 첫선을 보였을 때의 일이었다. 언론에선 “서스펜스 영화가 되려 하지만 갈수록 텅 빈 작품”(할리우드 리포터)이라 비판했다. 이듬해 국내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시선은 꽤나 싸늘했다. 대중적인 상업영화와는 결을 달리하는 프랑스영화라는 태생적인 탓도 할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문제작조차 되지 못한 채 일부 평론가들만의 애정이 어린 시선(“따라잡은 만큼 읽히는 유령일기”, 박평식)으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왜 이 영화는 유난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나. 영화는 무얼 응시하는가.
2. 줄거리
프랑스 파리에서 전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모델 키라(노라 본 발드스타텐 분)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미국 여자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이 있다. 그녀에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란성 쌍둥이 오빠 루이스가 있다. 영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루이스의 영혼이 자신에게 접촉해올 것이라 굳게 믿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맞닥뜨리며 기이한 현상들과 함께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의문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난 널 알아, 너도 날 알고, 내 정체가 안 궁금한가?”
혹시 루이스가 아닐까 하는 기대와 의심과 함께 그녀는 누군지 조차 모르는 존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자신의 욕망과 마주한다. 모린 주변으론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여러 혼란 끝에 드디어 그녀는 기다리던 영혼의 신호를 느낀다. 그 영혼은 누구인가.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3. 영화의 태도와 구조
이 영화가 유난히 평단과 관객의 평이 엇갈리며, 대체로 싸늘한 시선을 받은 데에는 영화가 취하는 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집요하게도 한 인물의 심리적인 진실에만 집중하곤 한다. 이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건을 사유하는 방식을 관객이 오직 몰입하고 잘 따라가야만 영화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대부분의 영화가 서사의 몰입과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건을 개관하고 때론 친절히 설명해주는 반면, 이 영화는 그 시간을 오직 주인공 모린의 심리적 시선에만 치중한다.
이 의도는 오프닝 시퀀스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기존 영화들이 갖고 있던 문법이나 관습적인 방식들에서 어긋난다. 상식적인 촬영이라면 처음 등장하는 공간에 대한 카메라의 태도는 무언가를 보는 인물을 보여주고, 그 인물이 본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령 첫 시퀀스에서 모린이 죽은 루이스의 집을 돌아다닐 때, 공간에 대한 묘사를 배제하고 오직 모린만을 앵글의 정중앙에 놓는 프레임만 봐도 그렇다. 또 그 공간에서 겪는 다소 기이한 일들을 연출할 때에도, 모린이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결국 무얼 봤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오직 모린의 반응과 심리 상태만 묘사하는 촬영과 편집을 주로 이용한다. 때로는 영상에서의 카메라의 통상 법칙인 180도 법칙도 자주 깨며 카메라를 유영시킨다. 모린이 겪는 기이한 현상들, 루이스의 집에 없던 것 같던 십자가가 원래 있었냐는 모린의 질문에 루이스의 옛 연인 라라의 대답을 소거한다든지, 예약한 적도 없는 호텔이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돼 있는 상황을 풀어주지 않고 그 상태로 종결시켜 버리기도 한다. 애초에 이 영화에 그런 사건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도다.
그 외에도 이 영화는 어딘가를 본 모린의 앞모습 이후 모린의 뒷모습으로 커트시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연출은 결국 영화 문법상으론 모린이 모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카메라가 모린을 잡는 높이 역시 아이레벨보다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찍고 있다. 이 역시도 모린이 보는 것을 찍은 게 아니라, ‘누군가 모린을 보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쇼트들은 모린과 모린이 그토록 욕망하던 자기 자신의 영혼이라는 영화의 결말과 맞닿아 있다. 영화가 끝을 맺고 나서야 발견할 수 있는 연출기법이지만, 다소 어색한 방식으로 암전되던 쇼트들은 모린의 입장에서 의문의 상태로 표현되고 있고,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음을 얻은 모린의 상태는 (낯설게도) 화이트 아웃으로 처리되는 부분 또한 흥미롭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바로 연출적 심급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낯설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결국 세 가지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첫째로는 퍼스널 쇼퍼로서의 모린과 그의 고용주 모델 키라의 이야기, 두 번째는 영매로서의 모린이 사후세계의 루이스와 접촉하는 현세와 내세의 이야기, 세 번째는 키라가 살해되는 이야기이다. 이 세 가지 이야기에 대해선 뒷부분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처럼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고 모호해지면서 애초에 관객의 혼란을 염두한 영화라 할 수 있고 이 또한 주제와 맞닿아 있다.
1) 모델 키라 – 그녀의 퍼스널 쇼퍼 모린 (사회관계, 비대칭 관계)
화려한 스타의 삶을 살고 있는 키라의 삶과, 그 삶을 뒷바라지하고 보조하며 키라를 직접적으로 물적 세계와 교량하는 역할인 퍼스널 쇼퍼 모린의 삶이 관계된다. 이 관계는 철저히 사회관계이자 상하 비대칭 관계처럼 보인다.
“키라는 완전 골칫거리죠?”라 말하는 모린은 그 삶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듯한 환멸과 경멸을 느끼나, 동시에 동경하고 욕망한다. 초반부 단순히 구두를 신고 싶어 하던 소극적 욕망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키라의 옷을 점점 많이 챙겨간다던지, 키라의 옷을 몰래 입어보는 등 점차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욕망으로 발전한다.ㅡ해당 시퀀스에 대해선 뒷부분에서 더 상세히 분석할 예정이다. 즉 키라의 세계는 물적 세계와 가깝다고 할 수 있고, 퍼스널 쇼퍼로서의 모린은 키라와 물적 세계를 연결해주며 그녀는 결국 그런 키라의 삶을 욕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죽은 루이스 – 영매 모린 (닫힌관계)
이란성 쌍둥이인 루이스와 모린은 생전에 먼저 죽는 사람이 현세로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자신을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영매라고 말하는 모린은 죽은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즉 루이스의 세계는 영적 세계이며 결국 현세의 모린와 영적 세계의 루이스는 닫힌 관계라 할 수 있다. 영화 곳곳에 루이스의 신호처럼도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 몇 나오긴 하지만 명확하게 루이스임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영매로서의 모린은 영적인 세계, 즉 죽음의 세계와 현세를 끊임없이 연결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끊임없이 루이스의 신호를, 루이스의 세계를, 즉 영적인 세계를, 죽음의 세계를 욕망한다. 결국 루이스를 욕망하는 건 죽음을 욕망하는 타나토스다.
3) 잉고에 의해 키라가 살해되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가장 큰 혼돈을 야기하는 인물이 바로 키라의 내연남 잉고다. 영화에서 단순히 1)과 2)의 세계만 겹쳐졌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복잡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결말이 돼서야 ‘잉고가 키라를 살해하는 이야기’가 밝혀지며 이 영화의 매듭이 풀린다. 모린이 키라의 집으로 옷을 가지러 올 때 처음 잉고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나눈 짧은 대화, 모린이 영적 세계의 집착에 매몰돼 있음을 깨닫고선 잉고는 모린을 끌어들여 키라를 죽이기 위한 완벽 범죄를 모략한다.
4. 문자 메시지 시퀀스
오직 온라인 화면만 등장하는 실험적 서사 전개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영화 <서치>의 이변을 제외하곤, 사실 대다수의 기존 영화에선 보통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노골적 표현은 지양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시퀀스 선정과 분석에 앞서 선정한 시퀀스의 바로 전 시퀀스, 이 영화에서 가장 실험적인 시도라 평가받는 무려 15분간 밀도 있게 집중한 문자 메시지 시퀀스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이 영화의 연출은 영화 속에서 모린이 휴대폰으로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대(Unknown)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큰 심혈을 기울인다. 숱한 영화들이 자막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할 수도 있는 장면들을 이 영화는 모린의 휴대폰 시점 쇼트로 지속한다. 마치 휴대폰을 하나의 인물처럼 연출해 리버스 숏으로 모린과 휴대폰이 대화하듯 연출한다. 청각적 연출도 탁월하다. 문자가 발신되고 수신했을 때의 신호음이 긴장감을 유발하고, 결국 이는 비행기 모드 해제 이후 연속되는 신호음만으로도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런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모린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존재와 문자를 이어간다. 아마 모린은 루이스의 신호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이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녀의 욕망을 내면 밖으로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5. 선정 시퀀스 : 키라의 집 시퀀스 분석
1) 플랑(plan) 분석
2) 주제 도출
모린은 늘 수동적이거나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물적 세계와 키라를 연결하는 퍼스널 쇼퍼였고, 영적 세계와 루이스를 연결하는 영매였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늘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그런 그녀는 늘 욕망하는 존재다. 언제나 타인을 욕망한다. 모린은 키라를 욕망하고 루이스를 욕망한다. 또한 금기를 욕망하는 존재다. 모린이 루이스라는 죽음을 욕망하는 건, 일반적인 도덕률에서 죽음이란 ‘살아있는 자는 죽으면 안 된다’라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모린이 키라를 욕망하는 건 자신의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키라의 금기다. 그렇기에 모린은 키라의 자리에서 점점 더 대범하게 욕망을 충족한다. 모린이 가진 욕망의 총체가 절정에 치닫는 시퀀스가 바로 위에서 분석한 ‘키라의 집’ 시퀀스다.
04#에서 모린의 욕망을 꿰뚫고 있는 의문의 존재가 모린의 욕망이 내면 밖으로 끄집어 나오도록 충동질을 하니, 06#~11#에서 키라의 사진을 보던 모린이 자신의 옷을 모두 벗고 속옷부터 구두까지 모두 키라의 것으로 갈아입는다. 이런 욕망의 표출은 결국 14#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 이르기 전에 먼저 카메라의 시선에 대해 주목해봐야 할 플랑이 있다. 10#을 주목해보자.
‘키라의 집’이라는 허구의 공간을 구축할 때 영화는 의도적으로 두 개의 공간을 설정한다. 그리고 역시 의도적으로 그 가운데에 화면상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강조해 마치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듯한 묘사를 한다.
이를 통한 외화면의 구축 또한 흥미롭다. 옷방(왼쪽)에서 외화면으로 모린이 퇴장하고, 다시 화장실(오른쪽)에서 등장할 때 통상적인 카메라 시선이라면 인물의 등장과 퇴장 타이밍에 맞춰 인물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오히려 인물보다 먼저 공간에 가있어 인물을 기다리고 이후에 인물이 내화면으로 들어오는 연출을 사용한다. 이러한 카메라의 동선은 욕망하는 인물에 대한 자유의지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 마치 어떤 시선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의 시선이 예측한 대로 모린이 옷을 입고 옷방을 따라 나오면 향하는 곳은 바로 키라의 침대다. 키라의 침대에서 키라의 옷을 입고 모린은 자위를 한다. 이 영화에서 찍은 쇼트 중 가장 기술적으로 염두해두고 찍은 자연이 바로 이 장면이며, 모린의 금기된 욕망의 총체를 가장 최고조로 묘사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의 금기된 욕망이 향하는 자위의 대상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분석 또한 충분히 주제와 맞닿아 있다. 첫 번째는 말할 필요도 없이 키라다. 두 번째는 역시 문자를 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존재일 테고, 세 번째는 루이스일 테다. 만약 루이스가 그 대상이라면 이 쇼트는 근친상간의 모티프가 섞여 있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근친상간은 또한 가장 큰 금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설득력 있는 대상은 결국 앞선 세 대상에 대한 욕망의 총체와 더불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자위라는 행위에서 가장 크게 욕망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위 장면은 모린이 자위를 하는 씬 중 한 플랑이다. 모린이 자위하는 모습을 영화 전체에 통틀어 유일하게 이중 인화 기법을 사용해 모린의 이미지를 겹쳐 놓았다. 특히 모린의 이미지를 좌우 대칭적으로 겹쳐 놓아, 마치 모린이 모린 자신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처럼 묘사된다. 결국 이 플랑에서 모린이 욕망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키라이기도, 문자를 보내는 누군가이기도, 루이스이기도 하겠지만 이 총체를 뛰어넘어 본질적으로 모린이 욕망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결국 그토록 갉던 타인에 대한 욕망과, 죽음을 향한 타나토스의 끝에 서 있던 것은 주체가 욕망하던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6. 욕망하는 ‘나’에 대하여
시퀀스 분석을 통한 플랑 분석으로 영화 <퍼스널 쇼퍼>의 주제의식까지 도출해봤다. 이제 마지막으로 행위소 모델의 적용을 통해 필자가 정리한 영화의 주제를 정리해보려 한다.
영화 속에서 키라와 루이스는 마주친 적이 없다. 심지어 이미 죽은 루이스는 단 한 번도 화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키라의 세계와 루이스의 세계는 모린이라는 교량을 통해 지속적으로 겹쳐진다. 물적 세계에 속해 있는 키라와 영적 세계에 속해 있는 루이스는 모두 모린이 욕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결국 금기를 넘어선 욕망의 끝에 남은 건 자기 자신이다.
이 구조를 행위소 모델로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모린은 영화의 결말부에 가서야 마주한다. 자신이 그토록 욕망하던 것은 키라도 루이스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잃은 채 삶을 유영하던 모린이 자기 자신의 실존 가치를 금기의 욕망을 통해 깨달은 이야기다. 또한 모린 자신이 유령을 본다는 전제 자체가 죽음을 전제하듯, 결국 죽음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금기인 욕망의 타나토스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유령으로 발견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욕망이 없다면 자기 자신도 없는 것이다.
만약 모린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사후세계에서의 루이스의 신호가 온다고 하더라도, 사후세계 존재에 대한 지식은 모린에게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루이스에게 신호가 오면 그 후엔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살아가면서 잊어야죠” 정도의 대답밖에 못 하는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영화 초반부, 의문의 존재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는 모린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냐’고. 그러나 이 말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은 이가 욕망하는 ‘나’의 ‘욕망’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세상에 가능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절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세상의 끝은, 욕망의 끝은 자기 자신이 서 있을 테고 그것은 또한 죽음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프랑스영화미학적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