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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명 Jul 23. 2018

버림받는다는 것과 작별한다는 것

<토이 스토리>시리즈가 가져다 준 의미

15년에 걸친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메시지의 위대함은 비로소 3편에서야 완성된다.

1995년, 이 장대한 역사의 시작이 된 해는 바로 영화라는 매체가 시작된 지 정확히 100년이 되었던 해, 그리고 디지털 장편 애니메이션의 효시가 된 <토이스토리>가 탄생한 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영화사의 한 세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2010년이 돼서야 다시 돌아온 3번째 <토이스토리> 이야기는, 어쩌면 1995년 당시 꼬맹이였던 관객에게 바치는 다락 위 먼지가 옅게 쌓인 추억의 선물 같은 존재다. 1편에서 앤디를 연기한 꼬맹이 존 모리스는 어느새 어엿한 청년이 되어 굵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우디와 버즈를 연기한 톰 행크스와 팀 알렌도 이제 어느새 주름살이 훨씬 늘어난 50대가 됐다. 그리고 앤디처럼 우리 각자의 장난감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던 우리도,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팔짱 끼고 콧잔등을 긁으며 보는 덩치 큰 관객이 되어버렸다.

이 지점을 정확히 파악한 <토이스토리3>은 완고하던 우리의 팔짱을 어느새 스르륵 풀어 촉촉해진 눈가를 훔치게 만드는, 그런 위대한 영화가 아닌가.


<토이스토리> 시리즈는 3편에 걸쳐 확고한 주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버림받길 두려워하는 존재들, 누군가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는 연대와 협동의 의리, 우정, 사랑 그러나 이별의 순간은 다가올 거라는 불안감과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간들. 

이 영화는 이 모든 메시지를 우리의 동심과 추억이 담긴 ‘장난감’에 투영해 전달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들은 우리가 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데에도 똑같이 겪는 마음이자 순간들이다.  

"So long, partner"

우린 영원히 한없이 연약한 존재다. 덩치 큰 성인이 되어버린 존재지만, 이 우주의 작은 먼지 뿐인 우리 말이다. 버림받는 걸 두려워하고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은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아프다. 우린 그런 존재다. ‘인간’이라서 라기 보단, 한 생(生)을 살아가는 ‘존재’ 자체라서 그렇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버림받는 것에 의연한 존재도, 작별에 서툴지 않은 존재도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동물은, 대개 가족과 세상을 떠나게 될 시점을 대충 알고 있다고 한다. 내 가까운 지인과 15년 이상 함께한 반려견은, 시름시름 앓던 어느 때에 그 친구는 홀로 집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별의 순간을 예감한 존재가 그 고통을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멀리 가지 못한 채 집 밖 구석자리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별하는 건 언제나 어렵고 아프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정도면 많이 겪었다 싶어도 그 순간은 늘 서툴고 고통스럽다.

내게도 미처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대가 있다. 한때는 그런 상대에게 서툴기만 했던 내가 과연 조금이라도 좋은 파트너였을 지 끊임없는 자조에 휩싸여 내뱉을 수도 없던 물음을 되넨 적도 있다.

우디는 멀어져 가는 앤디를 향해 조용히 되넨다. “So long, parter," 똑같이 아프겠지만, 이들처럼 성숙한 작별을 하지 못한 나에게도 당신은 그렇게 말을 삼킨 적이 있을까.

그 상대가 누군지는(생물인지, 무생물인지조차)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당신의 마음 한편에도 가슴 아리게 떠나보낸 그런 상대가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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