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도키, 뉴욕>에 대한 단상
"괜찮은 거죠? 찰리 카프먼" (시네도키, 뉴욕)
좋은 영화는 늘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영화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남긴 이 걱정이 바로,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늘 저한테 말을 걸어오기만 하던 영화에게, 내가 말을 걸고 있을 때. 그리고 그 말이 고작 걱정스런 한 마디 밖에 안 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찰리 카프먼은 <이터널 선샤인>이나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가이자, 이 영화로 자신의 각본으로 연출에 데뷔했고, 이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로도 큰 호평을 받았지요.
공통점은 신경쇠약 직전의 인간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중 <시네도키, 뉴욕>이라는 데뷔작은 마치 유작처럼 보일만큼 피폐해진 이의 생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집에서 질식할 줄을 알면서도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 죽음이 두려워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지만 날로 쇠약해지는 남자, 그리고 이 소멸이 두려워 생의 연극을 남기려는 이 남자와 맞닿아 있는 듯한 감독 찰리 카프먼.
내게 말을 거는 영화들은 돌이켜보면 꽤나 숱했지만, 내가 말을 거는 영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건네는 말이 걱정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또한 그 걱정이 감독을 향한 것이라면 굉장히 기이한 영화적 교감이라 생각합니다.
감정에 불안하거나 생에 피폐를 겪고 있는 이가 이 영화를 본다면, 끝에 이르러 꽤나 독특한, 일종의 잠식과 같은 감정경험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아마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었기에 일수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찰리 카프먼을 향한 연민 때문일수도, 혹은 신경쇠약 직전의 나에 대한 무의식의 걱정 때문일수도 있겠어요.
어쨌든 이 영화는 나를 걱정하게 만듭니다. 그게 찰리 카프먼에 대한 걱정인지, 나에 대한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저는 앞으로 겨울이 느껴질 때마다 걱정할 거 같습니다.
당신이 존재하는 한 말이에요.
"괜찮은 거죠? 찰리 카프먼"
12/17/2017
<시네도키, 뉴욕>(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