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이블>
지나온 그 모두의 순간의 더께를 견뎌온,
가장 사적인 그 테이블, 가장 사적인 그 공간.
"카페에 손님 없을 땐, 진짜 말도 안 되고 재밌는 이야기 자주 들려. 우리가 투명인간처럼 없는 존재로 느껴지나봐"
카페 알바를 해온 주변 지인들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란 이름으로, 카페는 정보교환을 하는 장이자 지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뭐 이런 거창한 수식어 다 떼고, 카페는 그저 만인의 '사적인' 공간이자, '수다'의 장이다.
'만인'의 '사적인' 공간이란 표현. 참 아이러니하다. 어찌 '만인'의 공간이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카페란 공간은 누구나 이용하는 가장 공적인 공간이고 그 속에 존재하는 그 테이블은 그 공적인 공간 속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그 테이블엔 우리들의 사적인 모든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지나가고, 오고가고, 채 지나가지 못한 마음들은 그 테이블에 그대로 쌓여있다.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의 신작 <더 테이블>에선 말없는 이 테이블이 주인공이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본질을 같되 각각의 다른 꽃말과 매력이 있는 수많은 꽃처럼, 한국 영화계의 각기 다른 향기를 풍기는 꽃 배우들은, 이 영화에서 하루 안에 벌어진 각기 다른 사연 속에 피어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지나가는 상대편엔 또 각기 다른 입장과 사연을 가진 인물이 존재한다. 그 사이에 놓여진 하나의 똑같은 테이블은, 이 지나가는 마음들을 방관한 채, 하루 내내 이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 네 이야기를 관조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이 둘 사이 테이블이 되어버려 조용히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따름이다. 우린 입을 가려 킥킥대기도 하며 때론 쿡쿡 찌르는 아픈 감정들에 잔잔히 울상 짓기도 한다. 그렇게 그 테이블은 지나온 수많은 이들의 대화를, 마음을, 순간의 더께를 견뎌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한다. 그 하루 안에 테이블에 담긴, 켜켜이 쌓인 마음의 온도는 그 공적인 공간을 가장 사적으로 만들면서 순간의 공기를 달리한다.
영화는 <최악의 하루>의 거짓말 쟁이 은희(한예리 분)의 몇 년 후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임수정 분)이 두현(이선균 분)과 결혼 전의 은밀한 만남처럼 보여 프리퀄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종관 감독은 각 캐릭터들은 그 배우들의 필모에 맞게 자연스레, 또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한다. 각본을 완성한 뒤 네 배우들에게 원하는 배역을 골라보라고 한 뒤 그대로 영화가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어쩜 이리도 자신의 배역을 잘 찾아갔는지 미소가 절로 나온다. 특히 임수정 배우는 다른 배우들관 달리, 엔딩 크레딧에 '특별출연'으로 나오며 포스터에서도 '그리고 임수정'으로 씌여있듯,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일종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캐스팅이 되고 임수정 배우와 사전에 '특별출연'으로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김종관 감독에게도 배우 임수정이란 존재는, 그가 영화계에 데뷔하기 전부터 워낙 큰 배우였기에 그녀와의 동업이 더욱 특별함을 지녔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짧은 회차에 의해, 모든 촬영이 종료됐다고 한다. 슛이 들어가기 전, 김종관 감독은 각 4명의 여배우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 뒤, 슛이 들어가고 각 다른 상대 배우 앞에서 연기하는 여배우들을 보면서도 굉장한 흥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김종관 감독의 세계에서 여배우란 존재는, 그 세계관을 이루는 데에 없어선 안 될, 그야말로 '꽃'같은 존재일테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최악의 하루>에서, <더 테이블>에서 김종관 감독의 세계를 이루는 '꽃'들은 그 안에서 각기 다른 향기를 자아내며 캐릭터를 완성해낸다. 김종관이 조심스레 펴놓은 테이블 위 놓인 이 꽃들이, 앞으로도 한국 영화계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나 찬란한 세계를 이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