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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l 06. 2024

믿을 놈 하나 없는 우리 가족 여행기-2

(유럽) 첫 신혼여행이자 배낭여행 #2

샤모니에서 제네바로 가는 길은 눈 쌓인 침엽수가 촘촘한 숲길이었다. 왕복 1차선 도로를 부드럽게 달리다 마주 오는 버스를 만나면 우리 버스 기사님(우리 또래의 여자였다.)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인사하던 모습과 우탄이와 나누던 일상적인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생각하는 평온하면서도 이국적인 여행의 느낌 그 자체였달까.


그러나 제네바 공항에서 탑승한 로마행 비행기는 평온함과 정반대 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유럽 저가항공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기체가 이렇게까지 흔들리고 무사히 착륙했을 때 승객 모두가 박수를 칠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토를 보지는 않았다.)


로마에 도착해서도 숙소에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한참이나 가야 했다. 그래도 우탄이의 똑똑이 역사학과 친구가 로마에 대한 설명을 한 시간 정도하고 나서 자신 있게 추천해 준 숙소라 걱정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숙소는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했고 로마의 비포장 도로에도 곧 적응이 되었다.




로마는 정말 도시 전체가 유적 같은 느낌이었다. 주변에는 현대식으로 개발되어 있고 건물 한두 개만 잘 보존해 놓은 게 아니라, 주변의 분수, 나무, 길과 벽까지도 조화롭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현대적인 것은 사람들의 패션이었다.) 로마의 유명한 유적을 직접 보기 위해 하루에 3만 보 가까이 걸어 다녔지만 이런 여행도 우리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에펠탑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진으로 보던 것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못 받은 것이다.

가진 현금 탕진하고도 신난 여행객1

오히려 당일치기로 다녀온 피렌체가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두오모의 파스텔톤 색감이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에게는 피렌체에서 꼭 수행해야 할 미션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가죽 배낭을 사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가죽 거리에 가서 첫 번째로 호객을 하는 아저씨의 가게에 이끌려 들어갔다. 사장님은 영어로 짧지만 명확하게 영업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갈색 배낭 하나와 파란색 장지갑을 골랐다. 가격표가 따로 없어 얼마냐고 묻자 오히려 사장님은 우리에게 얼마가 있냐고 물었다. 제대로 된 흥정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던 25살의 우리는 순진하게도 정말 지갑을 까서 동전까지 탈탈 털어 보여줬고 그 돈은 그대로 사장님 손에 들어갔다. 우리는 사장님의 마음씨에 감탄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현금이 없어 두오모에도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밤의 피렌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로마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덤 앤 더머가 따로 없지만 그때 지불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아도 엄마 가방을 사고 뿌듯했던 기분, 피렌체의 밤거리를 걷던 발걸음은 기억에 생생하니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소비였다 생각한다.


엄마의 미션을 수행했으니 이제 아빠의 미션을 수행할 차례였다. 천주교 신자로서 바티칸에 꼭 한 번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업체에 투어를 신청해서 바티칸에 당일로 다녀왔다. 일일 투어는 처음이었는데 가이드님과 걸어 다니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생한 설명을 들으니 흥미로웠다. 그전까지 패키지여행이나 투어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어 여행 초반에 하루 정도 신청하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기대했던 피자와 파스타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커피와 디저트류가 정말 맛있었다. 그중에서도 우탄이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였다. 한국에서도 종종 에스프레소를 마시긴 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같이 주는 각설탕을 넣어 먹더니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냥 허세를 위해 마셨던 게 들통나 버렸다.) 나는 티라미수와 젤라또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처음 알았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당이 떨어질 때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먹었던 디저트 덕분에 이탈리아의 강행군을 버틸 수 있었다.


멋있고 개성 강한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또다시 위태로운 저가항공을 타고 다음 여행지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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