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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n 24. 2024

삼원숭가족: 33살 부부와 9살 아이의 이야기-11

You~ 센스쟁이!

숭이에게는 자기만의 유행어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말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자기 자신을 '아꿍이'라고 불렀으며, 재채기를 하고 나면 꼭 '꼬이 꼬이 꼬이'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내가 숭이가 좋아할만한 일을 준비하거나 깜빡한 물건을 챙겨 왔을 때는 'You~ 센스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처음 이 말을 사용했을 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던 것 같은데 숭이가 좋아할만한 어린이 뮤지컬을 예매했다고 했을 때로 기억한다. 다리 한쪽을 들고 두 손은 가위 모양을 만들어 나를 가리키는 동작까지 곁들인 모습에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반응에 나는 숭이보다 더 행복해했고, 이후로도 숭이는 종종 이 표현으로 나를 기쁘게 한다.




사실 난 머릿속으로 항상 숭이랑 뭘 하고 재밌게 놀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건 숭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의 취향이 비슷하기도 하고, 나 혼자는 왠지 쑥스럽거나 부담스러운 것들을 숭이를 앞세워하려는 마음도 있다.


눈썰매, 어린이 뮤지컬, 워터파크, 놀이공원, 박물관, 애니메이션 등등 여러 가지 정보를 눈여겨보다가 꽂히는 게 있으면 예약을 하거나 숭이에게 보여주는데, 그때 저 반응이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만약 다른 말이었다면 어땠을까? '고마워'는 왠지 아이를 위해서만 내가 뭔가를 준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너무 어른스러워 거리감이 느껴진다. '감동이야'는 내가 평소에 뭘 안 해준 것 같은 기분에 살짝 서운할 지도. '엄마밖에 없어'는? 숭이의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아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줬을 때 너무 고맙지도, 미안하지도 않고 'You~ 센스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 간의 관계이다. 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부담이 없고, 내 니즈와 취향을 알고 딱 센스 있게 준비할 수 있는 관계라는 뜻이니 말이다.


내일은 숭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블루베리를 넣은 요거트를 준비해 저 말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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