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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n 23. 2024

삼원숭가족: 33살 부부와 9살 아이의 이야기-10

나를 닮아버린 딸 (2) (부제: 테니스를 하는 이유)

‘나를 닮아버린 딸 (1)’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내가 못 하는 것을 극도로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이 특성을 인지하고 혼자 남몰래 연습하면서 잘 살아왔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우탄이의 권유로 시작한 테니스였다.


3년 전 실내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3개월 정도 받고 우탄이의 회사 동기들과 커플 테니스 게임을 했다. 가만히 서 있기도 더운 한여름에 복잡한 룰까지 따라가려니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가장 최악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겠다는 것이었다. 리턴은 물론이고 서브조차 제대로 잘 못 넣는 테생아를 게임에 데려간 남편을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같이 게임을 한 사람들은 모두 처음이라 그렇다고 격려해 주었지만 내 자존심과 멘털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볼링이나 포켓볼, 배드민턴과는 달리 테니스는 완전한 초심자가 참여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레슨 몇 달은 받아야 친선 게임에 나올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실력이 안 되면 전체적인 게임 자체를 루즈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스포츠. 내가 바라는 건 게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 되어 가끔 아는 사람들과 친선 게임을 하는 것인데, 그 수준이 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일과 육아 때문에 꾸준히 하지 못 했다고 해도 햇수로 3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큰 발전이 없다. 특히 휴직 후 맘먹고 다시 주 2회 레슨을 받은 지도 3개월이 넘었건만 오히려 실력이 나빠진 것 같아 진심으로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특히 지난주 친선 복식 게임을 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그냥 날 버리고 혼자 치라고 할 정도로 자존심도 상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난 그저 친선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바라는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이렇게까지 돈과 시간을 들일만큼 나에게 테니스가 필요한 운동인가?


이런저런 생각에도 ‘그래도 해보자’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도 견디고 당장 실력이 늘지 않아도 꾸준히 연습하면서 내 약점을 이겨내보고자 하는 의지이다. 아마 숭이가 같은 상황이었어도 계속해보라고 했을 테고 그러려면 나 먼저 그런 사람이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숭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조언해 줄 것인가’ 생각을 해보면 답이 명확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주로 어렵거나 재미없는 선택일 경우가 많다. 뭔가를 잘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든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든가, 남을 따라가기보다는 너만의 길을 만들라든가 등등 조언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려운 일들이다.


이런 어려운 정답을 내 아이가 기꺼이 선택하길 바란다면 나부터 그렇게 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나이가 들고 알게 된 인생의 진리를 아이에게 대신 강요하는 못난 부모보다는 아이의 롤모델이 되기 위해서, 나는 테니스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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