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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l 01. 2024

삼원숭가족: 33살 부부와 9살 아이의 이야기-12

고밀도의 전우애

얼마 전 숭이의 친구 엄마와 이야기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남편이랑 스무 살 때부터 만나서 살면 어떤 느낌이야?"


'그냥 같이 크는 거죠~' 가볍게 대답했지만 그 후에도 우리 부부에게 남들과는 다른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탄이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벌써 함께한 지 14년 차이다. 그동안 대학생활, 군 입대 및 제대, 취업 준비, 결혼, 출산, 육아, 입사 등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들이 끊임없이 있었고 우리는 그 모든 순간 함께였다. (심지어 군 생활할 때에도 말이다.)




흔히 육아를 하면서 난생처음 겪는 어려움을 이겨내며 부부에게  전우애가 생긴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육아 외에도 인생의 여러 중요한 관문을 같이 지나가며 전우애가 보다 진하고 끈끈해진 것 같다.


대학생 때 철없이 놀던 우탄이가 학군단이 되어 군기가 바짝 들어있던 모습, 훈련을 마치고 살이 쪽 빠져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던 모습, 중요한 시험 발표 전날 긴장하며 기다리던 모습, 취업 면접이 끝나고 정장 차림으로 후련하게 나오던 모습, 신입사원 최종 합격 발표를 확인하고 기뻐하던 모습, 회식을 하고 비틀대며 집에 겨우 찾아왔을 때의 모습, 야근에 지쳐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잠들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쌓여있으니 우탄이에게 느끼는 감정의 밀도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우탄이에게는 내가 낯선 곳에 따라 내려가 외로워하던 모습, 영화제 번역가에 합격해서 기뻐하던 모습, 아이 키우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시들시들하던 모습, 필기 시험 가채점하고 눈물 글썽이던 모습,  면접 날 정장을 입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던 모습,출근 첫날 캄캄한 새벽에 출발하던 모습,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울던 모습이 기억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딘가에.)



퇴근후 과자 먹다 잠든 이소위.. 반려동물 아니고 반려자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말 그대로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집안일이나 육아에 소홀해서 얄밉다가도 잠든 얼굴을 보면 그때 그 철없던 아이가 얼마나 큰 책임감을 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애틋해지고 만다. 지금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불뚝 나와버린 배를 봐도 그 슬림했던 아이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하며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 나만큼 내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남편 하나뿐이니 육아를 하면서 쌓인 전우애는 더 어마어마하다. 14년 만에 이렇게 연리지처럼 얽혀버렸는데, 앞으로 갱년기와 노후까지 함께하면 도대체 어떤 사이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점점 젊은 시절만큼의 굴곡은 없어지겠지만, 나의 가장 찬란하고 가장 치열했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길이든 재미있고 가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건강만 하자, 전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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