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n of Whisky

한국 위스키 산업 (3) : 신세계

by Emotion


대한민국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겠다는 꿈은 김창수 위스키 같은 소규모 증류소에서만 꾼 것은 아닙니다. 놀랍게도 한국의 대기업도 이러한 꿈을 함께 꾸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위스키 산업에 출사표를 던진 거대자본 중 하나인 신세계 그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부회장 취임 후 스타벅스, 노브랜드 등의 사업을 성공시키며 화려한 신고식을 합니다. 특히 유학시절 즐겨마시던 스타벅스를 국내에 최초로 들여와 국내 외식 브랜드 순위 1위를 차지하게 한 것은 그의 선견지명이 발휘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36576_29971_351.jpg?type=w966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신세계그룹 & 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는 스타벅스 서초역점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 뉴스1)


그런 정용진 회장이 관심 있어하는 것이 바로 주류사업이었습니다. 여러 매체의 언급에 따르면 정용진 회장은 소주 6병 정도의 주량을 가진 주당이며, 맛만으로 위스키 브랜드를 맞추는 등의 모습으로 주변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애주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 역시 스코틀랜드 방문 당시 업계 종사자들에게서 목격담을 가끔 들을 수 있었고, 실제로 정용진 회장 주도 하에 신세계 그룹이 적극적으로 와인 양조장을 인수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술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은 2016년 7월이었습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정용진 회장은 내부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이마트의 제주소주 인수를 밀어붙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이것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류사업을 이마트의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용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XHS7GD2EHPKP6NOM5EK47MA4LQ.jpg?type=w966 정용진 회장 (출처 : 뉴시스)


당시 신세계가 소주 생산 시장에 뛰어드는 일은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마트 자체 브랜드나 노브랜드를 통해 식품 생산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세계는 음료를 주력으로 만든 적도 없고 주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세계가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고 있어 소주 시장 진출에 유리할 수도 있지만 이미 소주 시장은 포화 상태라는 것이 현대의 중론입니다. 점유율 5%도 되지 않는 작은 지역 브랜드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렵지요. 당시 부회장이었던 정용진 회장의 주류 사랑은 유명했기에 언론은 신세계의 제주소주 인수가 정용진 회장의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되었거나 향후 위스키 사업으로의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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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소주로 시작한 소주사업은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2022년 3월 사업을 중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주소주 역시 신세계 L&B로 흡수합병되죠. 2022년 특허청에 제주위스키, 탐라위스키, 탐라 퓨어몰트 위스키 등의 상표를 출원하며 위스키 사업 준비를 하던 신세계는 2023년 3월 위스키 사업 진출을 발표합니다. 제주소주 공장을 위스키 증류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스코틀랜드 증류기 업체와 구매계약 체결까지 사업이 진행됩니다.




20240422065518459655.jpg?type=w966 2020년 이후 분기별 와인 수입 물량/금액 추세 (출처 : 와인 21)


그러나 이윽고 사업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신세계 L&B의 핵심사업인 와인 판매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2023년 3분기 신세계 L&B는 누적 기준 10억 4200만 원 분기 순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합니다. 3분기 매출액은 전년도의 같은 기간보다 10.9% 감소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3년 1-10월 와인 수입량은 전년도에 비해 20% 가까이 줄었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엔데믹 이후 경기 회복이 더딘 데다가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유통업계 전망이 밝지 않아 신세계 L&B 측의 고민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윽고 2023년 12월 신세계 내에서 위스키 사업을 전담하던 'W 비즈니스 팀'이 해체되며 위스키 사업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이듬해인 2024년 정용진 회장은 신년사에서 ‘비효율 사업은 걷어내라’라고 언급하며 이 결정에 쐐기를 박습니다.


2023040700022_0.png?type=w966 신세계그룹이 매입한 미국의 와이너리 쉐이퍼. 2023년 순손실 163억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뉴데일리 경제)


결국 신세계는 2024년 4월 국내 위스키 생산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재검토하기로 결정합니다. 신세계 측의 입장은 잠정 중단일 뿐이라지만, 전담 부서가 해체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사업 철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기업이 이윤을 좇는 것은 마땅한 이치이지만,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습니다. 위스키 사업은 20-30년을 보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력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이 15년, 18년을 기다려야 하니 아무리 못해도 2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선발주자를 따라가려면 자본 또한 많이 부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성공했을 때 얻는 이익은 큽니다.

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면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당장의 불을 끄기 위해 미래의 먹거리를 포기하는 행보를 보자면 우리 기업이 위스키 사업을 하는 것은 애초에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107764670.3.jpg?type=w966 당시 부회장인 정용진 회장이 2021년 1월 신년사에서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근성을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출처 : 신세계 그룹)

일각에서는 정용진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드러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 또한 나오고 있습니다. 정용진 회장은 스타벅스, 크리스피 도넛 등 해외 브랜드 수입 및 운영에는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삐에로 쇼핑, 일렉트로 마트, 레스케이프 등 신사업 운영은 손대는 족족 철수하거나 사실상의 실패로 인해 축소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용진 회장이 장기적인 투자에 약세를 보인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어쩌면 위스키 사업의 철수는 불행한 사고가 아닌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024년 10월 정용진 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씨가 신세계 백화점 부분 회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정용진 회장의 활동무대는 이마트와 유통업으로 한정되었습니다. 창사 이래 첫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이마트의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위스키 사업의 앞날은 불투명해 보입니다.


그래도 대기업이 위스키 사업에 손을 댄다는 것은 좋은 신호입니다. 적어도 이 사업이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니까요. 드디어 한국 위스키 시장에 '생태계'라고 불릴 만한 것이 생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스키 사업에 진출하는 모든 기업을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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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박은서. “위스키 접은 신세계L&B, ‘본업인 와인에 집중.’” 서울신문, 5 Apr. 2024.

석남준, and 신지인. “정용진은 이마트, 정유경은 백화점… 신세계 ‘계열 분리.’” 조선일보, 31 Oct. 2024.

유정인. “신세계, 스코틀랜드 증류기 구매 계약 완료… 위스키 등 증류주시장 진출.” the Korea Post, 20 Nov. 2023.

이경은. “정용진, 제주소주로 주류시장 도전…위스키까지 발판 넓힐까.” 투데이신문, 8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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