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카 Jul 23. 2023

이별의 온도

나의 친구에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이별이 있다. 어떤 이별은 속이 후련한, 한 여름의 갈증을 날려주는 적당히 시원한 아메리카노 같은 온도였고, 어떤 이별은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속이 타다 못해 결국에는 그 열기를 눈물이라는 수분으로 뿜어내고야 마는 뜨거운 온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심장을 치고 지나가는 것은 내 속을 긁었던 그 어떤 놈팽이와의 이별도 아니요, 눈에 아른거리는 반려견과의 이별도 아닌, 내가 정말 사랑했던 친구와의 이별이다.


공연 일에 발을 담근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은 작품에서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열정 과다 상태의 조감독이었고, 그녀는 말수가 없고 시크한 표정이 인상적인 연주자였다. 스케줄을 관리해야 하는 나와, 일정 변경을 바라는 그녀의 입장이 달라, 초반에는 소소한 언쟁이 있기도 했었지만 우리는 차츰 친해졌다. 정반대의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10년 동안 매일 통화를 했고, 가족한테도 못 할 고민 상담을 했고, 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내가 힘들어할 때 같이 울어준 유일한 친구였고, 기쁜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때로는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혼도 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함께 한 공연을 이후로 같이 일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녀가 공연 쪽을 10년 동안 떠나 있기도 했지만, 왠지 일로 만나면 내 성격상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캐스팅을 못했었다. 그러던 중, 갓 결혼한 그녀가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부탁에는 거두절미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공연이란 순간의 예술이고, 그래서인지 돌발 상황도 잦다. 음악적으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난, 당시에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핑계를 대자면, 여러 가지 압박이 많은 상황이라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절친이다 보니 무리한 스케줄 변경을 해주거나 리허설을 빼주는 등, 나름대로의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연주자로서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난 다른 연주자들에게 하던 대로 코멘트를 했다는 게 그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쌍욕을 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이 일로 우리는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고성방가를 주고받고 심하게 다투었다. 처음으로 싸운 데다 그렇게 크게 싸운 것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날 이후 그녀는 그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한 번도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인 데다 서로 입장이 달라서 그랬다고 생각했기에 여러 번 화해를 신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고 그렇게 그 공연이 끝났다.


그로부터 약 3달 뒤, 난 다시 한번 마음을 담은 장문의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이 풀리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라고,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끝날 사이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진심을 전하면 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난 뒤에 온 답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난 네가 없는 세상이 더 좋다.’


나름의 쿠션어와 마무리 멘트가 있었지만, 결론은 그랬다. 가족보다 의지했던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으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마치 뇌 회로의 어느 한 부분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말 그대로 전신이 ‘얼음’이 되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떤 이별도 이런 데미지를 주진 못했다. 내 팔이 하나 잘려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몇 달을 울면서 누워만 있었다. 온 세상의 빛이 다 사라지고 시공간이 사라진 느낌, 블랙홀이 있다면 그건 내 집, 내 침대인 것만 같았다.


살아야 했기에 몇 달 만에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상담도 받으면서 다시 토해내고 게워내기를 몇 년, 그래도 사람은 치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좀 먹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조금씩 아주 지지부진하게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한 번 끊어진 뇌의 회로는 신호가 왔다 갔다가 했고, 세상의 불빛은 깜박깜박하며 수명이 다한 전등불과 같았다. 미련인지 집착인지, 미안함인지 섭섭함인지, 생각의 실타래가 이어지며 씁쓸한 마음을 놓지 못했다.


평소처럼 마음공부와 심리에 관련된 영상을 보던 어느 날, 알고리즘이 어느 유명 강사에게 이끌었다. 그분은 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을 전하며, 사람 사이도 다 때가 있고 그 역할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크게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흘러간 물을 잡을 수는 없구나.’

’ 그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주자.’


그녀는 결혼식에 온 친구가 나 포함 3명이라고 했을 정도로 함부로 친구를 사귀지 않고 조심스러운 사람인데, 내가 마지막 선을 넘었고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 극과 극의 성격인 우리가 우정을 쌓을 수 있던 것이 어쩌면 행운에 가까웠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나를 참아 주었을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면, 미지근한 온도로 지금까지 더 오래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에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연주했던 드뷔시의 ‘달빛’을 우연히라도 들으면 여전히 심장이 조여 오지만, 좋아하던 그 곡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치지 못하지만, 이제는 집착을 버리려고 한다. 다시 연락이 닿는다 한들 우리의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의 뒤늦은 사춘기를 받아 줬던 친구, 망망대해 같은 내 마음에 붙잡을 밧줄이자 부표가 돼주었던 그녀에게 나의 미숙함으로 상처를 줬던 것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 글을 읽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바다에 던진 병 속에 담긴 편지가 지구를 몇 바퀴 돌다가 운명의 주인공에게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녀의 상처는 나처럼 그렇게 깊지 않았기를, 나를 떠올린다면 빙하기의 온도가 아니라 적당히 뜨겁고 따뜻했던 아열대의 온도로 기억해 주기를... 염치없이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투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