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른 삶을 살려면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이며 한강이라는 작가의 책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우와 대단하다'라는 감탄사 이외에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우선,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이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채식주의자랑 나랑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난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아내가 갑자기 채식주의자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아내였기에 이유도 묻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책은 장식용으로 변했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불쌍한 이 책을 그냥 두기에는 아까워서 한번 읽어보았다.
이 책은 연작소설이다. 3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채식주의자, 2편은 몽고반점, 3편은 나무 불꽃이다.
1편: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는 어떤 꿈으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 꿈은 영혜가 어릴 적 겪었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악몽으로 나타났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개의 육질을 좋게 할 목적으로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다니며 잔인하게 죽였다. 그리고 개고기를 만들어 가족들과 나눠 먹었다. 이러한 폭력적인 기억이 어느 순간 꿈으로 나타나 영혜를 채식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영혜는 철저하게 채식주의자의 삶을 실천한다. 그러한 모습을 그의 남편과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가족들은 억지로 고기를 먹게 하고 영혜는 자신을 자해하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2편: 몽고반점
다음 편에는 중심인물이 영혜의 형부로 이동한다. 예술계에서 일하는 그는 아내로부터 처제의 엉덩이 쪽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후 그는 처제로부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처제에게 작품 속 인물을 의뢰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처제를 겁탈(?)하게 되고 아내에게 들키게 된다. 그는 구속되고 영혜는 자살하려 한다. 가까스로 자살을 막고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3편: 나무 불꽃
마지막 편에서의 주인공은 영혜의 언니다. 가족과 주변사람이 다 떠나고 유일하게 옆에서 영혜를 돌보는 사람이다. 영혜의 이상 행동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사랑으로 챙기려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링거주사와 음식도 거부한다. 오직 물만 마시면서 자신을 나무와 동일시하려 한다.
작가의 역량을 알기에 글은 재미있고 단숨에 읽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큰 교훈을 주거나 감상에 젖게 하는 책이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작품이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보편적인 모습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모습을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고 폭력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러면 소설 속 영혜는 채식주의자를 결심했고 그 행동이 남편에게 불편을 준다면 바로 이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육식 거부, 남을 불편하게 하는 옷차림 등 자신의 생활로 인해 남편과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 또한 폭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혜는 배려받길 원하지 누군가를 배려해주려 하지 않는다. 내 기분이 좋지 않게 변한 시점이 이 부분이다. 약자니까 당연히 배려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하다.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집단에서는 약자이지만 또 다른 집단에서는 강자로 변한다.
영혜는 남편과 상의도 안 하고 냉장고의 음식을 다 버렸다. 그녀는 젖꼭지가 드러나게 옷차림을 하고 남편의 부부동반 모임에 나타났다. 이 또한 폭력이다. 나는 여기서 이 작품의 모순이 드러난다 생각한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영혜의 모습이 표지 속 작가랑 닮은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