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삼구역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빨간 벽돌집.
동네 어디 한켠에 있을 법한 흔한 집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 동네 집들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옆집들과는 친하다 못해 햇빛조차 나누어 가져야 하는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이었다.
오래된 집, 오래된 동네였다.
나는 그 오래됨이 가져오는 고즈넉하고 정겨운 느낌이 좋았다.
저녁 퇴근길에는 담장 낮은 집집마다에서 끓이는 찌개 냄새가 소리 없이 골목을 누비고 다녔고 그 맛있는 냄새는 누군가의 퇴근길을 더 재촉했으리라.
그리고 그 오래된 동네에는 오래전부터 여기를 터로 삼아온,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녀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궂은날을 제외하고는 마을 공터로 나왔는데 계절마다 하는 일이 달랐다.
봄이면 냉이며, 쑥이며 봄나물 거리를 다듬었고, 여름이면 대자리를 가져와 밤동안 더위를 식히고 때때로는 화투도 쳤다. 가을이면 날이 좋아 이야기 꽃을 피웠으며, 겨울에는 햇빛을 쬐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러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이름 모를 나에게도 사과 깎았으니 하나 먹으라고 손에 덥썹 쥐어주던 그런 동네였다.
어느 날, 재개발 이야기가 동네를 한 바퀴 훑고 지나갔다.
여기 집들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아파트 조합원이 될 수 있고, 조합원이 되면 무조건 득이 되는 일이라고 한다.
아파트도 근사하게 지을 거라며 제법 있어 보이는 조감도를 들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 내면을 따지자면 결국에는 조합원이 되어도 여분의 돈이 있어야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에 들어갈 돈이 없으면 조합원을 포기하고 본인 소유의 집을 현금청산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리 집은 조합원이 되기를 포기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들은 진행되었다.
일부 몇몇은 반대를 하여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이 재개발에 찬성을 하면, 나는 우리 집에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일정 시일까지 집을 비우지 않으면 벌금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페널티도 있으니 시일 내에 집을 나가라고 한다.
그 시일이 다가올수록 이사를 가는 집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집에는 빨간 글자로 크게 공가라고 써놓는다.
동네가 흉흉하고 을씨년스러워졌다.
저녁마다 골목을 누비던 맛있는 냄새 대신 적막감이 골목을 휩쓸고 다녔다.
살던 곳을 원치 않게 떠나는데, 섭섭함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떠나는 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딴에는 재개발했으니 돈을 더 벌지 않았냐 하는데 현금 청산한 금액으로 다른 곳에서 겨우 전세방 얻을 만큼이었다.
섭섭함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떠나는 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용달 트럭에 가구며 세간을 옮긴 뒤, 텅 빈 집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집이, 땅이, 돈이라지만 그래도 보금자리였지 않았나!
평당의 가격으로만 삶이 깃들어있는 곳을 바라만 보는 것이 조금은 애달팠다.
큰방을 작은방을 부엌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관에서 거실을 둘러보니, 그곳에 있었던 그간의 가족의 일상이 슬로모션처럼 점멸해가고 있었다.
용달차에 몸을 실었을 때 마지막으로 보였던 건, 대문 옆에 냈었던 작은 개구멍.
늙은 개를 위해 엄마가 냈었던 구멍.
이름 모를 고양이가 종종 놀러 왔었던 구멍.
이제 저 개구멍으로 다니던 고양이는 어쩌냐는 생각에 가슴속 무언가가 울컥해졌다.
동네 어귀에 있던 공터는 사람의 정이 아니라면 이제 무엇으로 그 터를 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