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넷
종일 내린 장맛비를 뚫고, 밤 8시 35분 수영장에 도착했다. 카드를 확인하고, 73번 캐비넷을 배정받았다. 조금 늦어서 옷을 훌러덩 벗어 73번 캐비넷에 던져 놓고, 재빨리 샤워했다.
밤 9시 50분이다. 드디어 수영 강습이 끝났다. 호흡이 짧아져 수영하는 내내 힘들었다. 그러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간에 너무 많이 쉬었다. 체력이 국력이다.
마무리 샤워를 마치고, 다시 73번 캐비넷을 열었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캐비넷을 닫으려는데, ‘오후 7시 73번 표’가 보였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오후 7시에 73번 캐비넷을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 학생? 어른? 직장인?’
‘기초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혹시 아쿠아로빅?’
‘비가 내려서, 나처럼 오기 싫지 않았을까?’
73번 캐비넷은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불특정 다수 남자의 옷을 보관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옷은 땀 냄새로, 어떤 사람은 은은한 향이 가득 찼겠지.
‘나의 옷은 무슨 냄새였을까?’
그리고 벌거벗은 그들의 알몸을 보았겠지. 살이 뽀얀 10대부터 나처럼 배가 나온 40대 아저씨와 몸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남겨진 80대까지.
이제 73번 캐비넷을 닫고, 열쇠를 돌린다. 잠시 밝았던 캐비넷은 다시 어둠 속으로 긴 휴식에 들어간다. 내일 새벽 누군가는 73번 캐비넷에 빛을 다시 열어 주겠지. 아마도 그가 물속에서 호흡할 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