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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Jul 04. 2022

스스로 무너지지 않길

오늘의 인생(20220703주일)

며칠 전에 S 대기업과 S 은행에 다니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직장에서만 16년을 다니고 있는데,  분은 이직을 통해서 현재의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궁금했다. ‘과연 우리나라의 굵직한 기업과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두 분의 생활 수준은 괜찮았지만, 밥 먹다시피 하는 야근과 회식은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이들의 삶이 궁금했을까? 그리고 위축되었을까?’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보다 더 나은 삶 아니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살짝 움츠러들면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갑자기 내 앞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과 ‘아이들은 어찌 키워야 하지?’라는 고민이 한 번에 몰려온다. 스스로 남과 비교하고, 작아지니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고, 여전히 그렇다.


어제 예배 설교 말씀은 아가서였다. 술람미 여인이 등장한다. 솔로몬이 타지역에 데리고 온 여인이다. 그 여인은 포도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기 일에 나름 전문가였다. 농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햇빛을 많이 받고, 피부는 구릿빛을 변한다. 술람미 여인은 처음 솔로몬의 왕궁에 왔을 때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다른 여인들은 자기와 같은 구릿빛 피부가 없음에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움츠러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던 고향에서는 구릿빛 피부가 당연하고, 구릿빛 피부는 자기 일에 전문가(포도 농장 가꾸기)라는 뜻이 있기에 말이다. 즉, 흰 피부를 가진 여인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술람미 여인이 참 대단하게 보인다. 자기 동네가 아닌 낯선 곳에서 자존감을 잘 지킬 수 있다니, 이 말은 즉 그만큼 내공이 깊다는 거겠지.


술람미 여인이 나였다면, 위의 두 분과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교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두 분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너무 작아 보였고, 두 분은 나름 화이트칼러~. 맞다. 이게 나다. 여전히 비교하고, 스스로 작아지는 게 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도, 스스로 무너졌던 것처럼.


3조 1교대 근무 중인데, 늘 피곤하다. 24시간 근무 후 퇴근하면서 이틀은 정말 죽을 맛이다. 저질 체력도 한몫하지만 내 마음가짐도 문제가 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직업에 대한 태도가 훨씬 나아졌지만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 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도 잘 안다. 그리고 딱히 비교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교대 근무하니까 피곤한 게 당연하고, 나는 이틀 동안 잘 쉬고, 회복하는 게 나의 직업인데 말이다.


우선 인정해야 한다. 남과 비교할 때 스스로 무너지는 게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우선 내가 맡은 일에 더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스스로 움츠러들이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근무 날은 소방관 아저씨로서, 이튿날은 남편과 아빠로서, 셋째 날은 작가로서 내가 찾은 길을 걸어가면 될 것을. 내 여정의 목적지는 여전히 흐릿하기에 지금보다 조금 더 힘을 내서 걷다 보면 선명해질 날을 기대하며. 창피하지만 나를 들어내는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작가로서의 삶에 한 발짝 내딛는다.  


나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다.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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