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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Jun 27. 2024

벌써 13번째

아들 넷 아빠의 목요편지

오늘은 그날입니다. 쌍둥이가 매년 기다리는 그날. 바로 그들의 생일날입니다. 지난달 어린이날 선물을 주었습니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한 달 차인데, '어린이날 겸 생일 선물로 한 번에 해결하면 안 될까?' 그러나 쌍둥이는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선물이고, 생일날은 생일 선물이라고 합니다. '대관절'


10년 전 함께 근무했던 과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3분 차이 나는 쌍둥이도 세대 차이가 난데."


쌍둥이는 세대 차이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기질과 성격이 다릅니다. 게다가 하나의 세포가 갈라진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뚜렷하게 다릅니다. 축구하는 쌍둥이는 이번 달 초부터 골키퍼 장갑을 선물로 받겠다며 제 귀에 못 박히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뮤지컬 하는 쌍둥이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고, 조금 더 고민한다고 합니다. 어제는 "돈으로 주면 안 돼요?"라고 묻습니다. 어린이날에도 돈으로 받았던 친구입니다. 


오늘 아침 아내는 미리 미역국(비비고 협찬)을 끓이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저는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뜨고, 미역국을 끓입니다. 제가 끓인 미역국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쌍둥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비고 봉투는 잘 버렸습니다.) 쌍둥이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이 뚝딱 해치웠습니다. 덩달아 막내도 미역국 맛을 보았습니다. 역시 맛있나 봅니다. 


KBS 클래식 FM을 크게 틀었습니다. 라디오를 듣다가 급 '쌍둥이 생일 축하 사연'을 보냈습니다. 


'제발 쌍둥이가 밥 먹을 때 사연이 나오길.'


클래식 두 곡이 끝나고, 제가 보낸 생일 축하 사연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나 쌍둥이는 거실에 없습니다. 그들은 양쪽의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중입니다. '대관절' 생일도 아닌 저만 생일 사연을 듣고, 혼자 좋아합니다. 잠시 후 사연이 소개되었다고 스타벅스 쿠폰을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래. 나라도 듣고, 스타벅스 쿠폰 받았으니 됐지.'


막내를 등원시키고, 쌍둥이는 등교합니다. 뮤지컬 하는 친구를 현관문 앞에서 만나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면서 꼭 안아주었습니다. 축구하는 친구는 거실에서 꼭 안아주면서, '생일 축하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쌍둥이가 태어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쌍둥이를 앞, 뒤로 엎다가 한 명을 떨어트리기도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달라기도 했고, 5살 때는 둘만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여름이면 큰형을 유아 안장에 태우고, 쌍둥이는 트레일러에 태워서 물놀이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보조 바퀴를 달고 한강 자전거 길을 달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로드바이크를 사서 함께 한강 자전거길을 달립니다. 한강 라면 먹으러 말입니다. 


앞으로 쌍둥이의 삶에 어떤 풍경들로 가득 찰지 궁금해집니다. 다만 저는 하고 싶은 잔소리를 장모님이 꾹꾹 담아주시는 밥공기처럼 꾹꾹 눌러서 참고, 세상에 중심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쌍둥이를 응원해야겠죠! 


'쌍둥아!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이 땅에 우리의 곁에서 지지고 볶을 수 있어서 감사해. 사랑해! 앞으로 너희 삶을 격하게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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