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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0. 2020

말할 사람을 찾다가

섬에 살면 외로워요?

말하고 싶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바다 색깔 너무 예뻤어.”

오늘 파스타  먹었는데 전복도 들어가 있고 딱새우도 들어가 있어서 맛있었어.”

오늘 출근길에  차가 너무 느리게 가서 지각할 뻔했어.”

30  도시에 살다 처음으로 섬에 와서 살아보니 매일매일 이야기가 쌓여갔다.


그런데 말할 사람이 없었다. 애인도 아닌데 이런 얘기 하려고 전화를 걸기는  애매했다. 휴대폰 메신저도 어쩌다 한번 보내면 모를까, 매일 소소한 이야기들을 보내는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같았다. 그렇게까지 궁금해할 만한 내용도 아니고,  전해야 하는 말들도 아니고. 회사에 가면 동료들이 있었지만, 낯을 가리는 나는 아직 만난 지 얼마   동료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이야기하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SNS 찾게 되었다. SNS 매일 사진을 올렸다. 바다 사진, 한라산 사진, 오름 사진, 구름 사진, 음식 사진을 고르고 골라 올렸다.


매일 인스타그램 1개씩 올리는  규칙이야?”

제주도에서 친해진 친구가 물어왔다. 그러게,  서울에 있을  이렇게 SNS 많이 하는 사람 아니었는데.  이렇게 자주 올리게 되었는지 답하지 못했다.


외로움이었다. 오늘 밤은 곱창에 소주  잔이 당기는 그런 날인데, 제주에는 친구가 없었다. 아니, 일단 곱창집부터 없었다. 서울에선 천 몇백 원이면 지하철을 타고 금방 곱창집에   있었다. 여기선 만몇천 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나가거나, 차를 가지고 갔다가 이만몇천원을 들여 대리를 불러 들어와야 했다. 서울에선 50명이 넘는 동료들과 북적이며 일하다 그들  누군가와 갑자기 찾아오는 어느 밤의 술 고픔을 채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으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번 주말은 혼자 보내겠노라 다짐해도 주말 이틀 내내 혼자 있어본 적은 별로 없다. 토요일을 불태우는 술자리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주에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롯이 혼자였다. 혼자 있지 않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술병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히면 우리의 온도가 같아져 척수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까지 꺼내어 보여줄  있었지만, 전화는 우리의 온도차를 같게 해주지 못했다. 친구는 야근을 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면, 나는 저 멀리 바다는 보이지만 사방이 깜깜한 제주도의 중산간 어디쯤에 있었다. 서울과 제주의 기온차만큼, 미세먼지 농도의 차이만큼, 어쩌면 친구가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오가는 입김들과  얼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가져오는 습도의 차이만큼 우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오가는 대화는 점점 끊어져갔다.


사람은 TMI 이야기할  상당히  행복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주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분들은 어쩌다 만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같았다. 그동안 밀린 TMI 이야기할 기회를 잡은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렇게 되기는 싫은데. 이대로 계속  안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없이 쌓여가면 나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흥미를 살피지 못하고  얘기만 쏟아내는 사람이 되는  아닐지 두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SNS 띄엄띄엄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아니었다. 바다나 한라산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였고, 실제로도 달랐다.  다른 모습에  기분이 달라지기도 했다.  신나는 기분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같다. 누군가에게 말해야만  기분이 사실이 되고 두배가 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지만, 없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이 가짜인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인정받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되니 SNS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굳이 올릴 필요성을  느끼게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때때로 외롭다. 오늘 밤에도 방어회에 소주 한잔 하고 싶지만 참고 있다. 남들에게  행복을 자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은  외로움에 대해서 위로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에 누구와 살든, 죽을 때까지 외로움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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