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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1. 2020

팔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날이 좋아 환기시키려고 현관문을 잠시 열어두었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이거 한라봉  두고 갈게요.”

집주인 아주머니다. 외출했다 돌아오시며 한라봉을 많이 가지고 오셨나 보다. 열개가 넘는 한라봉을 내려놓고 가신다. 우리는 제주의 옛날식 가옥에 딸린 바깥채에 살고 있다. 주인집과는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어느 날에는 문을 열자 한라봉 두 개가  앞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집을 보러 왔던 날에는,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하며 우리가 일어서려 하자 이것  가져가라며 귤을 한대야 들고 나오시기도 했다.


제주에 살게  후로 절대  사 먹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귤이다. 한라봉, 천혜향을 포함하여.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귤을 얻어먹을  있다. 물론 대부분은 상품성이 없는 파지 귤들이다. 팔기에는 애매한 귤들은 온 동네에서 나누어 먹는다. 단골 카페에 가면 입구에  바구니가 놓여있다. 동네 고깃집에 가도, 횟집에 가도 입구에 귤 박스가 놓여있다. 마음껏 먹을  있는 귤들이다. 호텔에서 일할 때에도, 객실마다 웰컴 귤을 놓아두었다. 출근하면 회사에 귤이 박스채 항상 있었다.  농장을 하는 지인이 파지가 너무 많이 남는다며 한 포대씩 챙겨주기도 했다. 혼자  먹을  없어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한 봉지 가득 담아 나누었다.


이렇게 귤이 주변에 널려있으니 돈 주고 사지 않아도 겨우내 먹을  있다. 제주의 할망들이 당뇨에 걸리는 주요한 이유는 귤을 많이 먹어서라는 얘기도 있다.  얘기를 들은 후에는 아무리 공짜 귤이라도 세 개 이상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팔기에는  부족하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먹을  있는 귤들. 어쩌면 지금 나도 이런 파지 귤 같은 상태일까. 팔릴만한 글은 아니지만  봐줄 정도는 아닌 글들을 쓰고 있는  아닐까.


파지 귤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맛있고 감사하게 먹어왔던  갑자기 다행으로 느껴진다. 나라고 파지 귤보다 나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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