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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4. 2020

사람이 없었다면 유기견도 없었을 텐데


  제주에 살게 되고 나서, 나는 인간이 동물의 삶에 어떻게 끼어들었는지를 실감했다. 수많은 유기견들을 보면서, 사람이 아니었다면 유기견이 될 일도 없었을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로 위에 똥 싼다고 욕먹기 이전의 개의 모습을 상상했다. 길에서 로드킬 당할 일이 없던 시절의 노루의 발걸음을 상상했다. 화려한 건물들과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도 아주 오래전에는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식물들이 자유롭게 뿌리내렸던 땅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곳에는 사람의 건물 대신에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미 완성된 도시, 인간들의 도시 속에서만 살았기에 예전에 동물들이 머물다 간 자리를 모르고 지냈다. 도시가 지어진 곳은 처음부터 사람의 땅인 줄만 알고 있었다.


   지구가 본래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루가 살던 동네를 가로질러 차가 달리는 길을 냈다. 노루는 예전처럼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나무들이 숲을 이뤄 살고 있었는데, 구획을 그어 나무를 잘라내고 집을 지었다. 흙 위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누가 인간에게 지구를 마음대로 설계할 권리를 주었는가? 동물과 식물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은 개발을 누가 허락했는가?


  곶자왈에서 만난 숲해설가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소나무에 덩굴이 타고 올라가기에 소나무의 생장을 방해할 것 같아 덩굴을 잘라버렸더니, 소나무도 덩굴도 아프게 되었다는 이야기. 덩굴을 그대로 두었다면 소나무와 덩굴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좋은 역할을 해주며 함께 자랐을 것임을, 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고 했다. 사람의 기준에선 덩굴보다 소나무가 귀하겠지만, 자연의 기준에서는 소나무도 덩굴도 모두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호텔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우리 호텔은 객실 베란다와 풀숲이 연결되어있는 구조라 벌레가 많이 나왔다. 객실에 벌레가 나타나 컴플레인이 발생하면, 방역업체를 호출해 독하게 방역을 진행하곤 했다. 날이 더워지고 벌레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방역 호출이 빈번해지자 방역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개미, 지네  죽이면 사람도 죽어요. 생태계 다 무너져서.


  그러나 도시 생활에 익숙한 투숙객들에게, 벌레와 동침하는 것을 감내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멸과 퇴치의 기술이 발전해가는 도시에서는 점점  벌레  일이 없어지니 제주에서 벌레를 만났을 때 충격이 크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도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지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네의 실물을 처음  순간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 벌레는 화려할수록 더 징그러운가. 지네가 발이 많다는 건 동화책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직접 보면 현란한 발놀림과 강렬한 색깔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독이 튈 것 같은 느낌이다. 약품으로 소독하고 광을 낸 건물에서 지내다 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 지네가 있냐는 말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지네가 사라지는 세상은 발전한 세상이 아니라 무너진 세상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정녕 자연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걸까? 자연과 가까이 살게 되면서 몸의 불편함보다 마음의 불편함이 커졌다. 인간의 기술력이 발전할수록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연과 연결되어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있는 문제일까? 지금 당장 누리는 편리함이 미래의 지구의 수명을 끌어다 쓰는 거라면 전체적으로 봤을  손해 아닐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난 것이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어릴  배웠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의문스러워졌다. 과연 우리가 동물, 식물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있을까? 지구에게 인간은 암세포 같은 존재라, 지구를 멸망시키는 역할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맞는 말이지만 지구 멸망은 아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느낌으로는 생각보다 빨리 그날이   같아 두렵다. 인간만을 위해 다른 동/식물들을 통제하지 않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원초적인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일지 고민된다.


  전봇대 하나 없는 깊은 숲 속으로 산책을 갔다. 세상과 동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늑한 숲의 느낌이 좋아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J에게 말했다.

  “여기다 집 짓고 살면 좋겠다. 자연인처럼”

  “와, 너무 좋겠다. 근데 너 에어컨 쐬면서 넷플릭스 볼 거잖아? 여기 차로 못 올라오는 것 같은데 택배는 어떻게 받을 거야?”

  “… 진입로 입구에 택배 박스 만들어야지 뭐.”

  인간은 이미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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