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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3. 2020

나를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 존재

튼튼이는 리트리버 믹스견으로, 지난여름부터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정확히는 튼튼이의 주인과 내가 함께 살게 되면서 튼튼이도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튼튼이는 두 발로 일어서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키가 크고, 산책을 하다가 저 쪽으로 가겠다고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힘으로는 내가 이길 수 없을 정도다. 집에서는 키우기가 힘들어 뒷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튼튼이 집을 지어주었다.


제주에는 유기견이 많다. 육지에서 개를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간다는 소문도 있다. 오래전 TV에서 보았던 백구는 수백km를 달려 주인집을 찾아왔는데, 이제는 찾아오지 못하게 섬에다 버리고 가는 걸까. 제주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는 친구들이 많지만 유기견 보호소에는 더 많은 유기견들이 늘 있다.


한두해 전, 친구들이 아주 작은 강아지들을 길에서 구출해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했고, 보호소 차가 와서 아이들을 케이지에 넣었는데, 하필이면 대형견인 튼튼이가 들어있는 케이지였다고 한다. 한눈으로 보기에도 체급 차이가 많이 나기에 친구들은 저 대형견이 작은 강아지들을 해칠까 걱정했다. 하지만 튼튼이는 작은 강아지들을 보살피며 핥아주었고,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친구가, 튼튼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유기견 보호소 차에 실려있던 당시, 튼튼이는 옆구리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상처가 깊어 지금도 눈에 띄는 흉터가 남아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튼튼이는 몸만 컸지 나이는 한두 살밖에 안 된 아기였는데, 아기가 아기를 핥아주었던 것이다. 자기 몸이 아픈 아기가 다른 작은 아기들을 말이다. 튼튼이는 누구에게든 한 번도 날카롭게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천성이 유순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서귀포에 폭설이 내렸다. 튼튼이와 함께 처음 맞는 눈이다. 튼튼이는 물을 싫어해서 비가 오면 밖에 안 나오려고 하는데, 눈은 좋아할지 궁금했다. 무얼 경험하게 해 주어야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 이 마음은 분명히 사랑인데, 여태까지 겪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랑이다.


얼마 전 아침에 외출하면서 간식을 주려고 뒷마당에 가보니 문이 열려있고 튼튼이가 없었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과,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만 왔다 갔다 하고, 사고가 정지됐다. 마치 CD플레이어에서 CD가 튀면서 버벅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자주 가던 곳에 있기를 바라며, 다니던 산책길로 일단 찾으러 갔다. 늘 똥 누던 공터, 고양이 관찰하던 곳을 훑었는데 없었다. 사고라도 났으면 어쩌지, 잡혀갔으면 어쩌지, 이대로 못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늘이 까매지려던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튼튼이였다. 지나온 길엔 정말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 있다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를 알아보고 나타나 주어 너무 고마웠다. 목줄을 하고 산책하던 때보다 훨씬 생기 있고 힘차 보였던 튼튼이. 목줄 없이 마음대로 놀 수 있게 해 주면 좋아한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얼만큼 좋아하는지를 눈으로 보았다.


혼자 어디서 놀다 왔는지, 왜 물을 싫어하는지,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몸의 상처는 어쩌다 생긴 건지, 으르렁대는 법을 아는데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못하는 건지는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줄이 풀려도 영원히 떠나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은 들게 되었다.


어떤 존재가 밥 잘 먹고 똥오줌만 잘 싸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튼튼이를 통해 배웠다. 사고를 쳐도 네 탓을 하기보단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한다. 튼튼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이 들지 않는데, 연인의 마음은 왜 그리 알 수 없다고 느꼈었는지. 기대라는 것이 실은 관계를 망치는 덫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튼튼이는 나에 대한 신뢰가 있을까? 어떤 신뢰가 있을까? 끼니를 꼭 챙겨줄 거라는 신뢰, 산책을 매일 시켜줄 거라는 신뢰,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신뢰? 만약 내가 실망을 주는 일이 생기면 튼튼이는 나를 비난할까? 뒤끝 없고 명쾌한 튼튼이와의 관계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얻는다.


튼튼이를 데려온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튼튼이 앞에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튼튼이는 내가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할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 거야. 꼭 돌아올 거라고 생각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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