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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7. 2020

다 알죠? 제주에 살면 불편한 거


제주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인터넷 쇼핑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요가 장갑이 필요했던 나는, 인터넷 최저가 제품을 골라 주문했다. 이천 몇백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격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주소를 입력하고 결제 순서로 넘어가는 순간, 내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숫자가 나타났다. 도서산간지역 추가 배송비가 더해진 금액 칠천 원가량. 최저가도 무력화시키는 섬의 마법이었다. 섬에 살고 싶으면 이런 것쯤은 감수하라는 선전포고 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칠천 원이면 양호한 가격이야. 이천 원이 너무 쌌어. 물 건너가서 사 오는 수고를 생각하면 오천 원가량의 추가 배송비는 괜찮아. 한 번도 배송비로 오천 원 이상의 돈을 내본 적이 없었기에 있었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자기 세뇌였다. 도서산간지역 추가 배송비 때문에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다시 짐을 쌀 순 없으니 말이다.


제주에서 처음 같이 살았던 룸메는 자유로운 싱글 생활을 즐기는 분이었다. 부모님은 인천에 계시지만 혼자서 강원도에 살다가, 경상도에 살다가, 제주에 내려온 지 5년 차였던 그녀는, ‘단지 제주도가 좋아서 내려온 경우에는 3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 3~4년쯤 고비가 와서 많이들 다시 육지로 올라가더라’며 아름답게만 보이는 제주생활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물 건너온 비싼 식재료와 물건들, 빈약한 생활 인프라, 다소 고립된 생활, 맛있고 새로운 음식은 다 서울에 있다. 인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도 없고 공연이나 전시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은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여행으로 와야 좋지, 살만한 곳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무엇보다 먹고살기가 어렵다. 아마 제주가 좋아도 결단하지 못하는 분들 중 대다수는 일자리 때문일 것이다. 육지에서 벌었던 만큼 제주에서 벌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 육지에 비해 일자리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고 인건비가 낮다. 나도 육지에서 벌던 것보다 적은 연봉에 사인하고 내려왔다.


긴 여행을 와 있는 건지 눌러살려고 와 있는 건지 스스로 정립하기 전의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제주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서 느꼈다. 나는 단지 제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한 것임을.


어느 날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언제까지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전문직이 아니고 나이도 적지 않게 먹은 여자들인 우리가 이 회사에서 아주 오래 마음 편히 일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6살 많은 그녀는, 더 살아온 시간만큼 나보다 앞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노후 준비의 일환으로 각종 자격증을 따놓았다.


“근데 나도 특정 직업에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서울에서라면 식당 일이나 청소 일은 못할 것 같아. 친구들 만나러 나갔는데, 나 요즘 청소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 아무래도 조금은 깔보는 눈길로 날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근데 제주에서라면 청소든 식당 일이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육지에 있는 친구들한테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주에 살기 위해 택한 일이니 괜찮아.”


제주에서 산다는 건 단지 배경화면이 바뀌는 게 아니라 중심의 이동이다. 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에 배경이 바뀌고 보이는 풍경이 바뀌는 것이다. 새로운 중심, 새롭게 뿌리내린 땅이 마음에 들면 제주 생활이 행복하겠지만, 예전의 땅이 그립다면 다시 육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예전의 땅의 그립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맞지 않을 뿐이다. 나라는 나무와 이 새로운 땅이 맞지 않을 뿐. 어떤 식물은 따뜻한 땅에서는 자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도 때때로 서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기분이 조금 허한 귀가 길 지하철에서 이천 원짜리 예쁜 양말 한 두 켤레를 고르는 재미가 있고,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 같을 때 예술 영화 전용 극장이나 전시회에서 감성을 수혈받고, 맛있는 음식들을 지하철만 타면 언제든 먹으러 갈 수 있는 생활. 하지만 그것들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괜찮다.


지난달,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부엌에는 아궁이 자리가 남아있고, 나중에 전기 공사를 했는지 벽에 구멍을 뚫어 전기선을 연결해 놓았다.  현관문 잠금장치는 자물쇠로 되어있고, 단열공사도 안 되어 있는지 벽에 결로가 생겨 곰팡이가 핀다. 서울에서도 40년 된 건물에 딸린 원룸부터 신축 오피스텔까지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았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고 더 대충 만들어진 집에 살게 되었다.


빛이 안 들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늘 어둡고 축축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서울이었다면 절대로 입주하지 않았을 집에서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내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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