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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15. 2020

헤어질 줄 알았다면 제주에 올 수 있었을까요.

“나 제주도 가서 살래!”

그의 첫마디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말리고 싶었다고 해도 말리지 않았을 그다.

“해외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너도 같이 가자.”라고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바다가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었고, 그는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은 상태였다.


나는 친한 친구였다가 연인이 된 우리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비슷한 정치 성향에, 비슷한 취향. 20대 초반에 만나 친구로 지낸 시절부터 쌓아온 많은 추억들. 나의 장점을 나보다 잘 알고,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깊게 헤아릴 줄 알았던 그. 서울과 제주의 거리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일상을 함께하다시피 했지만 앞으로 다른 곳에서 일상을 보내더라도, 함께 해 온 오랜 시간과 쌓인 신뢰가 있기에.


하지만 돌이켜보니, 장거리 연애를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딱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예상. 우리는 멀어지는 거리만 생각했지, 각자의 달라지는 일상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둘 다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였는데 말이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그와 새로운 장소로 이사 온 나. ‘같은 분야의 일을 했고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우리’ 일 때 예상했던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달라진 상황 속에서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노력이 필요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몰랐다. 미리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함께 준비한 것이 별로 없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상대방의 방식에 대해서 미처 알지 못한 채.


최소 2주에 한 번씩은 만나자. 우리는 약속했다. 처음에는 번갈아 서울과 제주를 오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서울에서의 데이트에 흥미를 잃었다. 왜 그랬을까? 그와의 만남보다 제주 생활에 더 빠져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마음은 그가 아니라 제주와 연애를 시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하는 삶과 제주에서의 삶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서울은 과거가 되어버렸고 현재는 제주였다. 그와의 관계도 현재인데, 그는 과거 속에 있었다. 나는 그를 나의 현재로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꿈은 서울에 있었다. 나 하나만을 보고 제주에 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하나만을 보고 서울에 가지 못하겠으므로. 나는 못하겠지만 너는 해야 한다고 어찌 요구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만나서는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반복됐다. 제주까지 내려와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기껏 싸우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싸움거리가 되었다. 상처에 상처를 더했다. 그가 없는 제주의 일상과, 그가 나를 만나러 제주를 방문했을 때의 시간조차 조화롭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느 연애가 끝을 정해두고 시작하겠냐만은, 그와의 연애는 끝이란 게 없을 것만 같았다. 진짜 친한 친구가 애인이 되어서 좋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내 말을 제일 잘 알아들어주고,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그의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전혀 불안하지 않으며, 가장 따뜻한 데다가, 같이 놀면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 애인이라니. 친한 친구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걸 만류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당시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린 다를 거니까. 하지만 결국 같았다.


멀어진 거리만큼 달라진 일상,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한 각자의 시선은 친구 사이에서는 허용되지만 애인 사이에서는 허용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나의 기대와 그의 기대는 달랐고, 서로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친구였다면 이 정도 일로 네게 실망하고 싸우고 미워하지 않을 텐데. 친구이던 시절보다 못한 시간이 찾아오고, 나는 결국 애인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


왜 우리가 영원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였을까? 아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시간은 거저 주어지지 않지만,  실패하고 나니 더욱 크게 느껴진다. 언제 어느 곳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아니, 변치 않는 마음이라는 것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다. 상대방의 인생이 나의 삶에 변수가 되는 것을 허용하는 노력.


나는 노력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 보고 걸어갔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그는 나의 길을 지켜봐 주었다. 갑작스러운 여자 친구의 제주행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의 꿈을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해 응원해주었다. 자신의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의 연애’가 있기 이전에 ‘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존중해주었다. 그래서 헤어졌음에도 고마운 마음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친구로서도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우리가 계속 친구였다면 평생에 걸쳐 나눌 추억과 행복을, 연애했던 3년 동안 바짝 땡겨썼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끝났다.


단 한 번의 이별로 친구와 애인을 잃고 나서 두배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곳에서 오롯이 외로움을 견뎠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제주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완전하게 혼자인 곳에서 내 삶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사를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완전히 혼자된 느낌. 내 뜻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느낌. 이렇게 마음대로 사는 게 좋으면 평생 연애를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상적인 연애란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연애라지만, 이상적인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익히 알기에.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차라리 혼자서. 나는 사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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