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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5. 2020

제주를 떠나려고 하니 제주에 살고 싶어 졌다.

  강원도로 이사 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두어 차례 강원도에 올라가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어디쯤의 동네가 좋은지 꽤 구체적으로 마음의 결정도 했었다.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 꼭 ‘제주라서’ 온 건 아니었다. ‘서핑을 자주 할 수 있는 바다 근처’가 후보였고, 제주, 양양, 부산 정도가 순위에 올랐다. 그중 제주에서 가장 수월하게 직장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주에 오게 되었다. 그 후 2년 동안 주거지 선택에 대한 나의 조건은 변함이 없었고, 강원도의 ‘서핑을 자주 할 수 있는 바다 근처’로 이사 가는 것 또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땅을 사서 직접 목조주택을 짓고 싶었다. 그런데 제주는 토지 시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강원도에서라면 제주의 반값에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섬이 주는 외로움도 이유였다. 막 비행기가 끊기면 무슨 수를 써서도 서울에 갈 수 없는 조건이 때론 답답했다. 강원도는 정말로 원한다면 밤늦게라도 서울에 갈 수는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강원도 둘러보러 간 김에 서핑까지 하며 강원도 이사 프로젝트의 첫 삽을 뜨고 나서, 다시 제주에 내려왔다. 떠날 생각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이제 이 회사와도 안녕이다’와 같은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지만, 하루하루 눈에 들어오는 제주의 모습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공짜로 누리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갑자기 제주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출퇴근길마저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직 내가 제주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은 오름 너머의 일출이 예뻐서 새벽 기상의 짜증이 가셨고, 퇴근길의 억새와 노을,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바다가 업무로 지친 몸의 텐션을 올려주었다. 아차, 잊고 있었던 서울의 출퇴근길이 생각났다. 지옥철에 끼여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에너지를 다 쓴 것처럼 지치던 날들. 그에 비하면 제주의 출퇴근길은 호사스러웠다.


  물론 강원도에서도 시골에 살려고 했었기 때문에 제주와는 또 다른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곳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제주가 너무 좋아져 버렸다. ‘꼭 제주가 아니어도 돼.’였던 마음이 ‘제주니까 여기 더 있고 싶다.’로 바뀌었다. 동시에, 강원도에 간다면, 내가 지금 기대하는 것만큼 좋을까 의문이 들었다. 강원도 생활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실망까지 자동 예약한 것 아닐까. 제주에서 겪던 어려움이 강원도에 가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겁이 났다. 마침 집 짓기를 위해 우리에겐 좀 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서, 제주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강원도에 대한 기대 속에서, 오히려 제주의 매력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제주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찬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직접 살아보는 건, 생각보다 별로야.”

  ‘거주지로서의 제주’에 기대했던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일관된 평이다.


  나는 제주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제주에서도 직장생활은 여전히 피곤했고, 자취생활은 고단했다. 서핑을 자주 하려고 내려왔는데, 파도 없는 날들이 길어질 때면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트 가는 길에 만나는 수국, 언제든 볼 수 있는 바다, 술 마신 다음날 속을 달래주는 제주식 해장국과 같이 소소한 기쁨들이 일상에 있었다. 이런 걸로 행복할 줄은 몰랐던 것들이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어요.”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다. 어떤 일을 앞두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할 순 있지만, 과연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한 기대란, 특히 어렵다. 사랑하니까 기대도 하는 거라는 말에 우린 너무 길들여졌다. 기대가 없다는 것과 무관심은 다르지만, 같게 느껴진다. 기대가 없다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등치 되지 않는 마음가짐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상대방을 통해 내 일상과 인생이 좋아지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내 삶은 나의 선택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계속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아플 때 나의 몸과 마음을 헤아려주기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좀 더 내가 바라는 인간상에 가까워지기를 말이다.


  친구일 때는, 그의 인생관을 존중했고, 내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자체로 감사했다. 나의 계획은 내 힘으로 이루어가야 하는데 그가 힘을 보태준다면 감동했다.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늘 생각했다. 그럴 때 그는 더없이 소중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연인이 된 후 그가 소홀해졌는가? 잡은 고기에겐 먹이 안 준다는 옛말처럼? 아니다. 그를 내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나의 기대뿐일 것이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나로 인해 그는 지칠 것이다. 우리가 연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소홀해지기를 택할 가능성은 낮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는 꽝을 뽑은 거다.


  제주와의 관계는 기대가 없었기에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인데 나의 기대가 그를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기대하는 마음을 없앤다는 것을 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여겨야겠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혹시 모르지. 훗날의 나는 그를 떠나고 나서야 그의 장점들이 다시 보였다는 글을 쓰고 앉아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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