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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30. 2018

치앙마이와 미세먼지

어쩌면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 한국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치앙마이에 오기 전, 정보 수집을 위해 가입했던 치앙마이 여행 카페에서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내용은 바로 미세먼지에 관한 것이었다. 치앙마이는 아직까지 화전농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3월은 버닝 시즌(Burning season)으로 곳곳에서 밭을 태운다. 문제는, 치앙마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먼지가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비도 거의 오지 않는 시기라서 태워서 생기는 먼지들이 공기 중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1년 중 가장 더워지기도 하는 때라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치앙마이를 떠난다. 슬로 시즌(Slow seaso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시즌에는 가게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는 곳도 있고 숙박업소의 경우에는 할인 프로모션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려고 점찍어둔 요가원도 4주간의 긴 휴가를 갖는다고 하여 아직 가보지 못했다. 


치앙마이 여행 카페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여행 일정을 변경할까 고민된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계획한 대로 치앙마이에 왔다. 지난겨울 한국을 뒤덮은 사상초유의 미세먼지를 이미 겪은 터라, 미세먼지가 심각해봤자 한국만 하겠냐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공장이나 자동차로 인한 매연 때문에 발생하는 미세먼지에 비하면 농업으로 인한 미세먼지는 왠지 착한(?) 미세먼지 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원래 이 길 너머엔 산이 있는데 산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산과 하늘의 경계까 아주 흐릿하다

며칠 전 밤에 약 20분간 소나기가 내렸다. 드디어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건가 싶어 빗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창문 밖에는 여전히 뿌연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비가 내리면 먼지는 웬만큼 씻겨가던데, 치앙마이의 미세먼지는 소나기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미세먼지인가 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미세먼지 앱을 다운 받았다. 이럴 수가. 치앙마이가 세계 1등이었다. 다들 마스크를 끼고 다녀서 미래도시인 것 같다는 베이징조차 가볍게 누르고 1등 먹은 오늘의 치앙마이.

미세먼지 앱에서 보여준 세계랭킹


그래도 한국에서 미세먼지에 시달릴 때보다 훨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눈만 뜨면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미세먼지 심각하다고 경고 주는 분위기였는데, 여기서는 태국말을 모르니 눈 감고 귀 닫고 사는 셈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 모른 채 사는 건 아니다. 확실히 분위기는 다르다. 이 곳이 너무 둔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다. 지난겨울, 미세먼지가 계속 이렇게 기승이면 한국에서 어떻게 살겠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어쩌면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 한국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미세먼지까지 난리라니 싫었던 것이다.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3~4월은 피해서 오는 것을 추천한다. 나야 괜찮지만 남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추천하고 싶으니까. 다만, 3월 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오기가 꺼려진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나에게 씌워져 있던 30대, 여자, 직장인, 딸이라는 모자를 모두 벗고 홀가분하게 진정한 '나'로서 지낼 수 있는 이 날들에 미세먼지가 큰 방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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