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뭐든 가능할 줄 알았다. 돈도 벌고, 사랑도 하고, 가정을 꾸리면 인생은 퍼즐처럼 착착 맞아떨어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퍼즐 조각은 끝없이 늘어나고 상자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열심히 살고, 갓생을 흉내 내며 돈도 벌고 있지만… 마음 한쪽은 늘 잘하고 있을가는 의구심이 든다. 행복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옵션일 줄 알았는데, 결국 내가 받아 든 건 무한 할부 같은 책임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왜 그럴까, 도대체 왜 우리는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거라 그렇게 굳게 믿었던 걸까?
이 궁금증의 답을 뇌과학에서 찾았다. 도파민 때문이었다. 흔히 ‘행복의 물질’이라 불리지만, 사실 도파민은 결과보다 기대에 훨씬 민감하다. 원하는 걸 상상하는 순간, 뇌는 이미 도파민을 쏟아내며 들뜨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올 내일에 설레고,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데 막상 그걸 손에 쥐는 순간, 도파민은 빠르게 줄어든다. 합격 통지서, 첫 월급, 새 집, 새로운 사랑…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순간조차 생각보다 오래 남지 않는다. 뇌는 ‘쾌락적응’이라는 방식으로 금세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행복의 순간은 스치듯 지나가고, 빈자리에 다시 공허함이 들어선다. 그러니까 우리가 느끼는 실망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뇌가 원래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허무를 이야기해왔다. 불교는 삶의 바탕을 고(苦)라 했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욕망이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지적했다. 완전한 충만은 애초에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건, 그 결핍을 애써 지우려 하기보다 그냥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싶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행복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거고.
삶은 늘 달콤하길 바라지만, 입안에 남는 건 대체로 쓴맛이다. 기대는 빗나가고, 마음은 자주 무너진다. 그렇다고 삶이 잘못된 건 아니다. 커피가 쓰다고 안 마시는 게 아니듯, 인생도 그 쓴맛을 삼키며 이어간다. 어쩌면 그 맛이 있어야 하루가 진짜로 삼켜지는 게 아닐까.
인생은 번번이 기대를 배신한다. 계획은 어긋나고, 사람은 떠나고, 마음은 쉽게 부서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하루의 무게를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다음 발을 내딛고 있다. 빛과 어둠을 오가며 살다 보면, 그렇게 또 하루가 이어진다.
기대와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은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결국 하나뿐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어릴 땐 정답이 주어졌다. 시험지의 답안처럼, 사회가 준비해둔 길을 그대로 걸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정해진 길은 없다. 나만의 답을 내가 써야 한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실망과 혼란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그래서 실망은 내가 아직 기대하고 있다는 신호, 여전히 살아 있다는 들뜬 맥박 같은 것이다.
뇌과학, 철학, 심리학이 다 똑같이 말한다. 행복은 도착지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우리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건 해결된 상태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중요한 건, 매일 작은 행복을 건져 올리고, 허망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태도라는 것이다.
행복은 뭘까. 손에 쥔 듯 사라지고, 없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남아 있다. 누군가는 성공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평온이라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은 정의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매번 새로 배워가는 감각일 뿐.
청춘의 실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더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뇌가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보여줄 때, 철학은 허무를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고, 심리학은 그 흔들림조차 성장의 증거라 말한다. 결국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무엇을 버텨낼 것인가,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걸 아는 상태가 아니라, 모른 채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완전한 행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엉성하고 빈틈투성이인 오늘을, 그래도 내 몫의 하루라며 끌어안는 마음이다. 그래서 청춘의 실망은 뇌의 오류가 아니라,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우리가 상상하던 ‘완벽한 어른’은 없다. 오히려 진짜 어른은, 여전히 흔들리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불완전한 존재로 남는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듯, 지혜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출발한다. 실수를 인정할 때, 그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어른다움이란 흠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상처와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 용기일테니까. 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다른 이에게 다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