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나를 소모시킬 때

by 김나현

아침에 엘리베이터 거울을 본다. 줄지어 선 얼굴들. 눈 밑에는 어젯밤의 흔적이 옅게 남아 있고, 표정은 대체로 무난하다. 말없이 서 있는 모습마저 서로 닮아 있다. 우리는 서로 동시에 인사를 건넨다. “네, 잘지내요!”


이상하다. 모두가 잘 지내고 괜찮다고 말한다. 가림막 같기도 하고, 숨구멍 같기도 한 그 말. 그 말은 하루를 무난하게 이어주고, 관계의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 준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과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 속에 머문다. 그러나 마음과 다른 “괜찮다”가 반복되면, 말이 마음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괜찮지 않은 날들이 문장 하나에 밀려, 방 한구석으로 정리되듯 사라진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남는다. 이유 없이 피곤해지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가라앉고, 사소한 말에 과하게 흔들린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다. 말해지지 못한 마음이 엉뚱한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번, 거의 자동처럼 작은 거짓을 말한다고 한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다. “괜찮아.” “문제없어.” “별일 아니야.”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안다. 그 말 뒤에 다른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문제는 이 거짓이 반복될수록, 결국 자신도 그 말에 설득당한다는 데 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할수록, 마음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반대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묘한 일이 일어난다. 흐릿하던 감정이 이름을 얻는다. 이름을 얻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막연한 덩어리가 아니다. 아주 작은 고백 하나가,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시작이 된다. 누군가는 웃다가도 문득 멍해지고, 또 누군가는 사소한 실수 앞에서 과하게 무너진다. 표정은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잘 지낸다”는 말은 그렇게 다정한 균열 위에서 위태롭게 유지된다.


사실 때로는 아주 작은 뱉음이 필요하다. “오늘은 조금 버겁네.” 그 한마디를 건네면, 멀어졌던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내 쪽으로 조금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굳이 큰 고백일 필요는 없다. 혼잣말이어도 괜찮다. 적어도 내가 내 마음을 듣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괜찮다 말은 거짓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진실일지도 모른다. 모든 상처를 드러내면 관계는 버거워지고,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 관계는 공허해진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적당한 침묵과 적당한 말하기를 선택한다. 그러니 이 인사는 위장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견디기 위해 발명한 장치에 가깝다.


하지만 편리함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말로 덮을 수 없는 마음의 깊은 곳. 우리는 그 자리를 끝내 피해갈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말 뒤에 숨겨둔 진짜 나를 불러내야 한다. 그 불러냄이야말로,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오늘도 같은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낸다고, 옅은 미소와 함께.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싱크대 옆 창문을 조금 연다. 바람이 드나들고, 낮 동안 쌓였던 공기가 천천히 빠져나간다. 컵 속의 물이 식듯, 마음도 조금씩 온도를 잃는다. 내가 원하는 삶은 가장 나다운 삶이고, 진실한 삶이다. 나는 알고 있다. 결국 괜찮다는 말로는 닿지 못하는 어떤 진실이,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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