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얼마나 많은 기대에 스스로를 조이며 살았는지 모른다. 늘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기 위해 마음을 쏟아냈다. 그러다 그 마음이 내가 그린 장면처럼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나를 다그쳤다. 더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는 이런 내가 너무 괴로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대표님에게 물었다. “대표님, 저는 이런 제 자신이 너무 괴로워요. 원하는 만큼만 주고,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마땅한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 질문은 오래 내 안에 잔향처럼 남아 간혹 코끝을 찌르기도 했다.
이 나라의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멀리 사는 몇 명의 친구를 제외하면, 나에게 친구라 부를 사람이 거의 없다. 그마저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친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내 안을 드러내기가 더 부담스럽다. 반대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친구 관계도, 어쩌면 서로가 이방인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사람 사이가 늘 멀거나, 너무 가까웠다. 관계가 좁으니 마음을 대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마냥 잘해주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곤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찔려 피가 나고, 그 상처를 피하려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는 회피형이자 불안형인 나. 아무렴, 나 하나라도 잘 지킨 게 어디냐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넨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외로움으로 꽉 채워지는 날들이 쌓이면, 결국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그리고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왜 어떤 관계는 편안하고, 어떤 관계는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답을 정리해 보니, 말은 간단해졌다. 좋은 관계는,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다. 연락의 빈도나 반응 속도에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는 관계. 겉으로 보면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 깊은 신뢰와 안정이 깔려 있는 관계.
나는 오래도록 반대의 관계 속에 있었다. 나의 안정은 늘 상대의 말투, 표정, 행동의 디테일에 달려 있었고, 머릿속에 그려놓은 ‘이상적인 시나리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변했지?” “왜 예전 같지 않지?”라는 의심은 사랑을 확인하려는 강박으로 변했고, 그 강박은 결국 상대를 조이기 시작했다.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난 다행이도 애착 이론을 알게 됐다.
안정 애착은 ‘상대의 존재’ 자체에서 안전감을 느끼는 유형이고, 불안 애착은 ‘상대의 반응’에서만 안심을 얻는 유형이다. 나는 전형적인 후자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더 큰 사람. 메시지를 얼마나 빨리 읽는지, 대답이 얼마나 길고 따뜻한지, 표정이 얼마나 부드러운지가 내 하루의 온도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대의 반응에만 의존하다 보니, 내가 스스로 안정감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상대에게 그 모든 짐을 떠넘기고 있었다. 그 무게는 결국 상대를 숨 막히게 만들었고, 나 자신도 지치게 했다.
기대보다 존재 자체를 좋아하는 관계가 오래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관계를 유지하는 에너지가 ‘통제’가 아니라 ‘수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거리는 마음을 압박하지 않는 거리이고, 그 거리는 ‘무관심’이 아니라 ‘신뢰’에서 만들어진다. 서로를 통제하려는 힘은 결국 관계를 소모시키지만, 수용은 관계를 자연스럽게 숨 쉬게 한다. ‘네가 오늘 어떤 표정이든, 어떤 말투이든,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는 마음이 관계를 지탱한다. 약속이 미뤄져도 다치지 않는 사이. 말수가 줄어들어도 의심하지 않는 사이. ‘오늘의 너’를 있는 그대로 두는 사이처럼.
오래가는 관계는, 상대가 매일 보내주는 안부나 끊임없는 애정 표현에서만 완성되지 않는 것. ‘무엇을 해주느냐’보다 ‘어떤 존재로 머무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대보다 ‘존재 자체’를 좋아하는 관계.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편안한 관계다. 그 안에서는 ‘해야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랑’이 자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좋은 관계를 오래 지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누군가 덕분에’ 안정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것.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생각을 위해 글을 쓰고, 내면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위해 취미를 즐긴다. 그들은 타인에게서만 기쁨을 얻지 않았고 자기 삶 속에서도 충분히 기쁨을 찾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아니어도 옆에 머무를 수 있는 사이.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이. 그리고 그런 관계는, 내가 나와 잘 지낼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를 단단히 살아내자. 그 하루들이 쌓이면, 언젠가 나도 그런 관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가 기다리던 건 사람이 아니라, 나와 잘 지내는 나였다는 것을. 늘 어제보다 오늘 더 깊이 깨닫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