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과 고독을 즐기는 방법의 교집합
"예은 님은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유튜브 구독자님이 남겨주신 댓글 중 일부 내용이다.
요즘의 나는
"외로움을 이겨낸다"기 보다는
"고독을 즐긴다"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외로움은 그야말로 쓸쓸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고독은 혼자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래 글은 내 외로움을 향수라는 다른 언어로 표현했을 때의 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외롭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더 많이 외로워질까 봐.
그냥 과거의 추억이 그리워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향수를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https://blog.naver.com/yerendipity_/223033052088
그리고 또 아래의 글은
외로움으로부터 시작된 우울을 벗어났을 때 썼던 글이다.
약 한 달이 걸렸다.
내 감정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예은 님은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시나요?"라는 질문의 답은 이 글로 대신할 수도 있을 정도로
외로움에 사무쳐하던 나의 마음들이 담겨있는 글이다.
내가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래 글에 나와있는 방법이 유효하다.
https://blog.naver.com/yerendipity_/223060440130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일 때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다.
"차라리 혼자가 나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었던 시절,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고독이라는 상태를 헷갈려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둘이 뭐가 다른 지조차 몰랐었다.
궁금은 했지만,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필연적으로 다가왔고,
나를 한없이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언젠간, "혼자보다 둘이 더 외로워."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 이후,
고독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독인 상태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즐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겁나지 않았다.
어쩔 때는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 느끼는 행복과
다시 혼자가 된 뒤 찾아오는 외로움을 온몸으로 다시 체감하 고나니
그 이후 찾아오는 고독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차라리 혼자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좌절의 연속이었다.
뜻하지 않는 고독을 마주하는 순간은 늘 힘들었다.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했던 나날들이 흘러만 갔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라는 자기 합리화 같은 말을 되새기며,
다시 혼자서도 행복한 나날들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도, 여전히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날 많이 힘들게 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로운 감정이 들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정도?
이건 이겨낸다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 더 가깝다.
나는 생각보다 단단하지 못했고,
여전히 많이 무너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함께해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순간에 언제나 충실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찰나인 그 행복의 순간을 발판 삼아 다시 고독을 즐기려 노력한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감정들은 여전히 낯설다.
아마 이번생을 살아가는 동안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라는 책에서 보면,
나이가 먹을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편도체가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더 행복해진다는데.
아직 내 편도체가 아주 활발하기 때문인 걸까.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하며,
내가 느끼는 감정들 또한 유한함을 상기시키며,
순간순간에 감사하는 태도를 지니려고 한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듯이,
백이 있으면 흑이 있듯이,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외로움이 있으면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위로의 말을 내게 건네며,
다시 또 다른 행복을 느끼기 위해 오늘의 고독을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