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적게 소유할수록 그만큼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이번 연도, 그러니깐 삶의 우선가치가 돈이었던 시절. 상반기 동안 월평균 약 358만 원까지의 수입을 내보았고, 하반기 동안은 최고, 월 550, 월평균으로는 490만 원까지의 수입을 만들어보았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 물질적 풍요가 이렇게까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적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후부터였다.
시간 = 돈이라는 공식은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칼같이 성립되었고, '돈이 되지 않는 시간들은 헛되다'라는 강박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수치로 스스로를 증명했어야 했고, 그 수치는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었다. 갑상선 항진증, 9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병을 진단받고 나서 우리 가족은 라오스라는 나라에 살게 되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탓에 한 달에 한 번, 왕복 25시간씩 꼬부랑 길을 버스로 이동하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피를 뽑아야 했고, 매일매일 약을 먹으며 호르몬을 조절해야 했다.
걸핏하면 심장이 터지는 기분에, 실제로도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는 심박수에 달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에 그때 당시 나와 우리 가족의 모든 선택은 건강이 기준이 되었다.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싶다는 욕망은 집착이 되어 필라테스 강사라는 지금의 직업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집착의 대상이 건강이 아닌 돈이 되었다. 뭐 때문일까, 왜 그랬던 걸까.
무언가를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고정관념에 휩싸이지 않으려,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나에게는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 여러 국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지금 당장 한국이라는 나라를 단 한 단어로 정의해 보라고 하면, 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무한 경쟁 사회'
<월 500>이라는 키워드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제목을 짓고 실제로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데 있기까지 약 한 달이 걸렸고, 내가 아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내가 그 키워드에 집착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국 유튜브 시장에서는 이 키워드가 100% 통한다."
나는 확신했다.
'이 키워드 쓰면 무조건 영상 뜰 거야.'
수없이 많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마케팅 책을 보고, 퍼스널 브랜딩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확실해져만 갔다.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의 삶을 그 수치로만 평가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내 인생을 그 숫자 하나로 정의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난 결국,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보다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했다. 그렇게 해야만 남들 눈에 더 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 채널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별의별소리를 다 들어도, 목표했던 바를 이뤄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이 있을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어린 여자라는 사회적 최약체로 살아보며 절실히 깨달은 사실이었다.
사실 그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누군가의 협박과 위협에 두려움을 느꼈던 일과 사기를 당할 뻔했던 일들이 연속되니 그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성인 남자의 부재가 날 이렇게 약하게 만들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억울했다. 분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렀지만 그때 당시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힘이 없으면 돈이라도 있어야 했고,
빽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있어야 했다.
돈은 어떻게든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벌어봤지만,
스스로를 지킬 무기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고립을 택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관계를 포기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건강의 악화와 공황장애였다.
삶의 가장 최우선 가치였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어느새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2023년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 지수는 57위라고 한다. 세계적인 리세처 센터인 퓨 리서치 센터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문한 결과, 글로벌 1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돈"을 선택했다.
"구성원 간의 신뢰의 유무", 행복지수가 높은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봉금의 절반 가까이를 군말 없이 세금으로 낼 정도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정부가 내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한국의 99%의 사람들은 국민연금을 내는 것이 무조건적인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물론, 세대 간, 남녀 갈등이 일상생활에 만연하고, 범죄 중에서는 특히나 '사기'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고, 기업이든, 직장동료든, 더 나아가서는 가족, 친구 관계까지 구성원 간의 신뢰가 0에 수렴할 정도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다른 국가의 답은
"가족"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사회가 돈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60년 전 깨달은 서구 사회에서는
돈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In fact, the less I have, the more I can love
사실상, 적게 소유하면 할수록 그만큼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중-
돈은 <물리적 실체>인가, <심리적 구조물>인가. 돈이 물물교환에서 조개 그리고 화폐로 발전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화폐, 즉 돈이 <심리적 구조물>이라는 사실에 반박할 여지없이 동의할 것이다.
그 말인즉슨, 돈은 상호 신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돈은, 우리가 돈이 가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비로소 가치가 있는 심리적 구조물이다. 만약 우리가 화폐 가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돈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대규모 협력이 가능하고, 그 협력은 우리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가는 데 기여했다. 즉, 협력은 생존과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한 인간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 협력을 위해서는 신뢰, 즉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신뢰 체계를 대변해 주는 유일한 도구인 돈은 구성원들끼리의 신뢰가 없을 때 그 가치가 올라간다. 한국사회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돈이 자리 잡은 이유이자, 내가 모든 관계를 포기하고 혼자 수입을 올리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을 시절, 가장 불행했던 이유기도 하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답답했던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결심했다. 내 삶의 우선가치를 다시 설정해야겠다고.
이후, 11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불행하다는 생각 한 번 든 적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근 일 년간 미친 듯이 매몰되어 추구했던 수입 증가를 포기하고,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삶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니 행복도는 더욱 상승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조화롭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또 언제 다시, 삶의 우선가치와 관련된 위기를 맞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원인을 몰라서 답답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속한 이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선을 다 해 이뤄봤기에 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겠지.
놓여있는 환경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경험을 해봤다. 원래도 환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경계했건만, 어쩌다 보니 그 사회 구성원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괴리감인지 찾아야만 했다.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양귀자 <모순> 중-
한 번뿐인 인생의 삶의 방향키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길. 때로는 과감하게 돌릴 줄 아는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