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소중한 에너지를 나를 위해 사용하기>
#나에게 에너지를 사용하기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에너지라고 하면 어떤 에너지가 있을까? 활동을 하기 위한 힘 에너지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는 가질 수 있는 자원 측면에서의 에너지를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에너지는 자원 측면의 에너지에 조금 더 가깝다. 가장 크게는 돈과 시간 에너지가 있지만, 여기서 나는 감정 에너지에 좀 더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소통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소통의 과정에서 저마다의 신념은 중요하게 작동한다. 비단 소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할 때도 당신의 신념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가지고 있다면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일대일 상황의 대화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당신이 조직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 말에 더 크게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신념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또한 험난하다. 신념은 어떤 사상이나 명제, 언설 등을 적절한 것 또는 진실한 것으로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심적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그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누군가의 간섭과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갈 때를 말한다. 외부환경에서의 수많은 자극 중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표출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신념에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 가끔 편견과 고정관념을 자신의 신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착각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이 신념이라는 개념은 편견 또는 고정관념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prejudge로 근거 없이 미리 호의나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고정관념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 또는 대상에 대하여 고착화된 방향으로 범주화하는 인지 방식이다. 쉽게 말해 마음속에 굳어 있어 변하지 않는 생각을 말한다. 신념은 객관적 사실 및 진실과의 일치에 있어 그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때로는 객관적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 또는 일탈하는 수가 있다. 즉, 편견과 고정관념은 신념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일탈하였을 때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만의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지는 일은 지도 없는 항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직접 가보기 전까지 그 길이 맞는지 모르고 눈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신념을 지키는 일은 폭풍우를 뚫고 항해를 이어나가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신념을 지키는 일은 많은 감정 에너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험난한 길을 이겨내는 일, 그리고 그 위험을 이겨내고 나서도 계속 그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 모든 것이 감정에 더욱 치중된 싸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신념을 지키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 타인의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비난은 상대방의 행동, 태도, 성격 등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내리는 현상을 통틀어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누군가를 비난하는 걸까? 앞에서 말한 개념들을 적용해보면 그 비난은 그들의 신념, 고정관념, 편견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흔히 하는 말실수가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사용법이다. 두 표현은 확실히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하는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 표현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려볼 수 있다. 타인과 나의 ‘다른’ 생각이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틀린’ 생각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타인의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줄 아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장 쉽게 구분하는 것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비난과 비판 모두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비난을 하는 기준은 주관성이 강한 편이다. 반면, 비판은 내용을 주관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진행된다. 이것이 비판이 유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만 비난은 그름만 들추어낸다.
앞서 말한 1단계: 나를 인정해주기, 2단계: 나만의 방향 찾기 과정을 제대로 겪었다면 3단계에서 말하는 에너지의 중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감정 에너지를 잘 사용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성장의 속도와 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일을 가장 마지막 단계인 3단계에서 말하는 이유는 당신이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비판을 넓은 마음으로 수용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회적 뇌를 가지고 있으며 유대감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고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나와는 다른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뇌의 지평선을 넓혀나갈 수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사람들과 함께 만든 도덕적 규범이 있어야 가능하고, 어떤 지식을 습득할 때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한평생을 바쳐 연구한 지식을 지금의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책을 통해 또는,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으며 길어도 몇 년 안에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에 혼자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남이 있기에 비로소 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경험과 생각은 타인을 통해서 보고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신념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사회적 규범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기준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므로 어느 정도는 세상과 합의를 봐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겪어야지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신념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제대로 된’이라는 뜻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지 않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화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합리화를
하지 않으며, 부정적으로 확대해석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렇게 만든 제대로 된 저마다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나가기 위한 훈련을 해보자. 타인의 시선에서는 조금 벗어나서 자유로워져 보자. 지금까지는 에너지를 여러 상황에 사용했다면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보자. 우리는 이제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으며, 타인의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신념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느낄 때까지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말자’이다. 조금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갇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타인의 비판을 모두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비판을 수용하되 그 비판이 결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또는 알아채지도 못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비판 또한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들에서 비롯된 그들만의 신념일 수도 있다. 아무리 객관화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나에게는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한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면 겨울 서핑이 있다. 처음 강릉에 겨울 서핑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의 결정을 반대했다. 춥고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겨울 바다의 추위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서핑이 나 같이 체구가 작고 운동을 해본 적 없는 연약한 여성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 그럼에도 내가 겨울 서핑을 한 이유는 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현실적인 조언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객관화된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1단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불안정한 존재이고 객관화된 지표도 그런 불안정한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그 바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로만 들었던 추위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도 없었고, 겨울 서핑이 얼마나 많은 체력과 근력을 소모하는 일인지 어림잡아 상상만 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 바다에 들어가서야 그 차가운 바닷물이 내 살결을 얼마나 잔인하게 파고드는지, 뼈를 서걱서걱 쓸어나가는지 느꼈다. 6mm의 두꺼운 슈트를 입고 겨울 서핑을 하는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몸을 목각인형처럼 둔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겨울 서핑은 그런 매서운 추위와 몸의 둔함 따위는 다 제쳐둘 만큼 매력적이었다. 내 마음은 몇 번의 저체온증이 오더라도 그 차가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서핑을 즐기기 위해 매일같이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며 체력을 길렀다. 도전해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정도로 서핑에 진심이 될 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이나 비난, 비판을 신경 쓰는 것보다 나 자신을 평가하고 돌아보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자고 결심했다.
예전의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일조차 타인의 말에 휩쓸리기 일쑤였다. 가장 쉬운 예로 누군가와 밥을 먹기 위해 메뉴를 선정하는 일처럼 말이다. 흔히 말하는 결정 곤란과 비슷한 개념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보다 좀 더 심한 팔랑귀에 가까웠다. 오랜 고민 끝에 힘겹게 결정을 하더라도 “그거 별로래.”라는 한 마디에 방금까지의 다짐이 무너졌고, 설렜던 마음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나의 결정은 온전한 내 몫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나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나의 취향조차 남들의 시선과 말에 휘둘리기에 십상이었다. 기쁜 일도 누군가와 함께 느껴야 비로소 내 감정이라고 생각했으며, 슬프고 힘든 일은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의지하기만 하며 견디려고 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중요한 시기를 헛되이 보낸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감정을 오로지 나 혼자만이 소유해보고 싶었다. 기쁜 일을 혼자 만끽하기 위해, 슬픈 일도 혼자 이겨내기 위해 결정한 휴학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는 것, 로망이었던 바다 근처에 사는 것, 가장 싫어하는 계절인 겨울의 무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서핑을 하는 것, 힘들고 두렵다고 생각하는 등산을 해보는 것, 계획 또는 목적지 없이 돌아다녀 보는 것, 나 자신에게 가장 귀 기울여주는 것,... 나에겐 이 모든 것들이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고 나를 당당히 드러낸 덕분에 나는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다.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 내가 다짐했던 모든 것들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나의 삶을 내 신념대로 내가 직접 만들어나갔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모든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부디 좀 더 가치 있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당신의 한정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렸다.
#마무리하며...
나는 세상이 말하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포기했다.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나의 마음보다는 내가 처해있는 환경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난 사회가 재단한 어떤 틀에 나를 차츰차츰 가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틀은 나를 답답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부터 알아가고자 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내가 먼저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인정해주었다. 다른 누군가를 마냥 따라가려고만 하지도 않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나만의 방향을 찾아갔다. 타인의 시선이 불필요하게 많은 짐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뭐 어때. 될대로 되라지.”라고 말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나에게만 쓸 수 있도록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자유는 충격적이고 달콤했다. 나는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운명, 나의 생각, 나의 태도를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오직 우리 자신만의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남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그러니깐 모두가 그런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되었을 때쯤 그 행복을 당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던 나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행복의 이유가 된다면, 나의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다. 이제 이야기를 끝마치며 나의 글과 삶에 느낌표를 새겨보겠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