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타인의 방향이 아닌 나만의 방향>
#2단계 나만의 방향 찾기
십 년 동안의 라오스살이 끝에 나는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오게 되었다. 라오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나의 배움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스무 살이 되어 십 년 만에 살게 된 한국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것들을 현실로 이룰 기회가 넘쳐났고, 하고자 한다면 원하는 경험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명확한 목표는 없었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기 전, 열아홉 살 나에게 목표라 한다면 한국 대학교에 가는 것, 오직 그거 하나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재밌어 보이는 과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열심히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공 수업, 교양수업, 교내활동, 대외활동 등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했다. 나에게는 딱히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경험할 때도 선택의 폭이 넓었다. 정말 말 그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았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은 채 빠르게만 흘러갔고, 나는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에 맞는 경험을 했고 스펙을 쌓으며 그 목표에 더욱 가깝게 도달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직 명확한 목표를 정하지 못했기에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대로 마냥 졸업을 할 수도 없었다. ‘뭐 해 먹고 살지?’ 라는 고민의 답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저찌 졸업을 한다 해도 코로나로 인한 고용불안 사회에서 취업을 할 자신도 없었다. 죽기살기로 취업준비를 하고 운이 좋게 취업을 해도 그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이상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난 그저 이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에게 언제든지 대체 될 수 있는 하나의 나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걱정과 불안에 끝없는 고민을 하며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다가 내리다 휴학을 결심했다. 가장 먼저 아직 해외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울리는 통화연결음 너머로 들리는 나의 마음의 소리,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송함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직 사회에 나가기에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부족하다는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들어주었던 엄마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엄마도 예은이 휴학하는 거 찬성이야. 대신 쉬면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마. 뭘 정해두고 이뤄야겠다는 거 안 해도 돼. 1년을 허송세월 보낸다고 하더라도 괜찮아. 뭘 해야 한다는 압박감 안 가지고 마음 편하게 여유를 가지고 푹 쉬어. 계획 없어도 돼. 마음 편하게 가지면서 그때그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해봐. 엄마 어렸을 땐 먹고살려고 바쁘게, 열심히만 살았었어. 그러다 보니 지칠 때도, 힘들 때도 많았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등산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뎠을까 싶기도 해. 우리 딸도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마음 편하게 보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허송세월 보내도 되니깐 계획 없이 보냈다고 자책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지금 너는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잖아. 뭘 하든 괜찮아. 대신 그것만 아니면 돼.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마. 엄마가 옆에서 돌봐줄 수 있으면 상관없는데 돌봐줄 수 없으니깐 지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니깐. 그것만 아니면 돼. 즐길 수 있는 거 충분히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
나는 엄마의 진심 어린 말을 들으며 급하게 통화의 음소거 버튼을 찾았다. 눈물이 가득 차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내 불안의 탑이 무너지면서 만들어낸 서글픈 소리를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비록 기쁨에서 비롯된 눈물이었지만 엄마라면 분명히 걱정할 것 같았다.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은 이날 흘린 눈물과 함께 쓸려 내려갔다. 무너지기 전에 이 탑이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든든했다. 그 생각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휴학을 했다.
일주일 후 나는 강릉으로 떠났다. 강릉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강릉에서 서핑이 하고 싶을 뿐이었다. 삶에 이따금 장애물이 찾아왔을 때 등산이 힘이 되어주었다던 엄마의 말씀처럼 나에게도 그런 힘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했다. 마침 예전에 호주에서 했던 첫 서핑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핑크빛 하늘, 잔잔해 보이는 바다를 가르는 파도, 그리고 그 파도를 자유롭게 누비던 그때가 생각났다. 나는 바다가 좋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런 바다가 서핑을 하는 순간만큼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파도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파도의 장난에 바다 품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를 짓누르던 모든 중력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입으로 들어오는 짭짤함은 내 혀의 모든 감각으로 내가 바다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눈을 찌르는 듯한 소금기는 내게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줬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바다 내음은 시시때때로 향수가 되어 나를 유혹했다. 그러나 내가 서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때 날씨는 2월,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싫어한다. 추위를 정말 많이 타기 때문이다. 10년을 더운 나라에서만 살아서 몸이 더위에만 적응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내 뼈를 파고드는 듯한 추위를 무서워한다. 그런 내가 겨울 바다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싫어하는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좋아하는 서핑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외부적 환경 때문에 방해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가 봤다. 와, 겨울 바다는 정말로 상상 이상의 추위였다. 살을 파고들어 뼈가 시릴 정도의 고통이었다. 강릉에서 서핑을 하며 몇 번은 저체온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부모님께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저 먼바다에서 표류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어쩌면 내가 했던 경험은 내 스펙, 진로,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비단 서핑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전했던 수많은 활동도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목표가 없었던 나는 아르바이트도 다양한 분야로 해왔고, 대외활동, 교내활동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참여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한 가지 일을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야만 원하는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초조해 했었고 한 가지 방향을 정하려 애썼다. 그러나 내가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만난 세상은 한 가지 방향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경험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가치를 발휘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슨 일과 안 맞는지 알아가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도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취향은 단순한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를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난 나의 일상의 결을 다듬고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질 수 있었다. 잘하지 못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과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마음이 가는 것을 실현에 옮겨 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나에게는 ‘다음’은 이렇게 해볼 거라는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치가 쌓였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했던 모든 도전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도전들은 모두 내가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정한 분야에서의 전문가는 더 이상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최고가 아닌 이상 언제든 대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대체재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AI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쉽게 학습하고 원하는 바를 완성도 높게 이루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말하듯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대체될 수 없는 차별화된 포지셔닝은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한 번뿐인 내 인생을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게 더욱더 버라이어티하게 만들고 싶다.
우리에게 꿈은 무엇일까. 꿈이라는 단어 진부하고 유치하고 추상적일 수 있다. 꿈, dream. 나는 꿈을 비전 vision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좋아하는 작가님인, 윤소정 작가님이 생각 구독에서 하신 말씀이다.
vision의 유사어는 eyesight 즉, 시력이다. 이렇게 바라보니 쉬워졌다. vision이 곧 시력이라면 어디를 보고 가고 있는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다. 시선 처리. 스키를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해본다. 초보가 넘어지는 이유는 시선 처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시선이 내 몸 가까이 위치할 때, 우리는 픽 쓰러진다. 그래서 스키강사분은 계속 강조하였다.
“시선 처리! 땅 보지 마시고요! 가고 싶은 방향으로 시선을 멀~리 두세요. 시선~ 시선처리! 몸은 시선따라 움직입니다.”
넘어지는 이유는 땅을 보기 때문이란 것. 길을 잃는 이유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탁 맞았다.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꿈이 없다는 것은 내 길의 방향이 없다는 것. 방향이 없는 삶. 괜찮지 않다.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은 곧 나의 시선이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나도 많은 신경을 쓰고 과한 영향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타인의 시선이 곧 나의 시선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장 내가 처한 현실을 남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까지도 타인을 의식하며 목표치를 설정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안과 걱정, 절망은 항상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 무한의 궤도를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음이 가는 것마다 곧장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도전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툴렀기에 실패를 겪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그 이후에 이루어진 자기 성찰 덕분에 같은 실패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의 속도를 찾아 나갈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타인의 속도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고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속도만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닮고 싶은 대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성공을 살짝 맛볼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 대체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만의 방향을 찾고 남들과는 다른 전략을 펼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올 수도 있다. 누군가가 이미 걸어간 성공의 길보다 있는지도 모르는 길을 무작정 가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과연 나에게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행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모르는 길이라도 그 길이 당신에게 행복감과 만족감을 준다면 기꺼이 달려나가면 좋겠다. 남들이 가는 길로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정말 간단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당신의 인생에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질문을 시작으로 정말로 당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한 번쯤은 깊게 고민하고 찾아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타인의 방향대로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