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의 현재이자 미래 '초신성' 루카 돈치치
댈러스의 마지막 공격에서 돈치치가 공을 잡을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다. 21살의 어린 선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담했다. 수비수를 앞에 두고 크로스오버 드리블에 이어 스텝백 3점 슛을 던졌다. 아름다운 슛폼이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손목으로 공을 튕겼다. 공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림으로 빨려 들어갔다. 1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2점을 시도할 수 있었는데, 왜 굳이 3점 슛이었을까. 여튼 부저는 울렸고, 135:133 댈러스의 승리로 경기는 끝났다.
2019-2020 NBA 서부 콘퍼런스 플레이오프 8강전(LA 클리퍼스 :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루카 돈치치가 또 일을 냈다. 42점-17리바운드-13어시스트로 상대를 폭격함과 동시에 연장전 버저비터로 침몰시킨 것이다. 이번 승리로 댈러스는 상위 시드였던 클리퍼스와의 시리즈 전적을 2-2로 맞췄다. 이제 어느 팀이 4강에 올라갈지 정말 알 수 없게 됐다.
사실 돈치치가 돈치치 했을 뿐이다. 이제 NBA 2년 차에 불과한 선수지만, 이런 활약이 익숙할 정도로 높은 레벨의 선수로 성장했다. 돈치치가 오늘(한국시간 24일) 경기에서 보여준 기록(40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 이상)은 NBA 플레이오프 역사에서 단 3번만 나온 진기록이다. 오스카 로버트슨과 찰스 바클리에 이어 돈치치가 달성했다. 팀의 멱살을 잡고 '하드 캐리'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기록이다. 아래 사진은 버저비터 득점 이후 장면이다. 모든 팀원이 돈치치를 향하고 있다. 댈러스의 현재이자 미래가 바로 루카 돈치치다.
돈치치는 경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근데 놀라운 것은 아직 돈치치는 1999년생, 만 21세에 불과하다. 돈치치가 보여주고 이뤄낸 것은 위대한 조던과 르브론에 비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21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돈치치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이 순간이 지금까지는 그에게 최고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역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 지금은 돈치치 농구인생의 서막에 불과하다. 최근 NBA에는 트레이 영, 제이슨 테이텀, 자말 머레이, 자이언 윌리엄슨 등 (90년 후반에서 2000년 초반 출생 선수들) 새로운 얼굴들이 마치 만화 원피스의 초신성들 마냥 등장해서 새로운 흥행을 이끌고 있다. 모두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가장 압도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는 '루카 매직' 루카 돈치치다.
사실 돈치치는 NBA에서 신인일 뿐 유럽 농구판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베테랑이다.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는데, 워낙 어릴 때부터 농구를 잘해서 지나온 농구 커리어가 탄탄대로여서 잘못된 표현인 거 같다. 10대 루카가 이뤄낸 업적이 너무나도 많기에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1999년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 출생.
-2006년 (7세) 유니온 올림피아 유스 입단.
-2012년 (13세) '리도 디 로마 토너먼트' U-13 MVP
https://www.youtube.com/watch?v=ioH0agl-feA (13세 이하 대회 H/L)
-2012년 (13세)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유스 입단
-2015년 (16세) 스페인 리그 성인 무대 데뷔
https://www.youtube.com/watch?v=oQLc1zcTURw (돈치치 데뷔전)
-2017년 (18세) 슬로베니아 국가대표팀 유로바스켓 첫 우승
-2018년 (19세) 레알 마드리드 유로리그 우승(유로리그·스페인리그 MVP 수상)
-2018년 (19세) NBA 드래프트 3순위 애틀랜타 → 댈러스
-2019년 (20세) NBA ROY(올해의 신인상)
https://www.youtube.com/watch?v=1YHwhdZncXk&t=11s (2018-2019 시즌 H/L)
돈치치가 NBA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던 것은 부족한 운동 능력이었다. "운동 능력이 부족하고, 디펜스가 약하며, 점프가 낮고 스텝도 빠르지 않다"는 등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었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저런 단점들이 없어졌냐고? 아니다. 스카우팅 리포트는 정확했다. 다만 돈치치는 자신의 장점으로 약점들을 다 덮어 버렸을 뿐이다. 안정적인 드리블로 공격을 지휘했고, 동료들의 기회를 옅봤다. 높은 BQ(basketball IQ)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했다. 유로 스탭과 스탭백 등 다양한 기술로 또 다른 약점들을 극복해냈다. 돈치치의 경기를 보면 막을 수 있을 거 같은 플레이인데 막지 못한다. 수비수들이 능력이 하향 패치가 된 것 같다. 빠르지도 않고 힘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는데, 돈치치는 어느새 자기만의 템포로 수비를 따돌리고 득점 기회를 보고 있다.
많은 유럽 출신 선배들처럼 돈치치는 BQ와 뛰어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꾸미고 있다. 여기에 돈치치는 뭔가 모를 빛이 더해진 선수다. 아마 이런 걸 스타성이라고 부르는 거 같다. 포르징기스, 루비오, 보그다노비치 등 뛰어난 유럽 출신의 선수들이 NBA를 누비고 있지만 돈치치에게는 이들과 다른 스타성이 있다. 슈퍼스타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고, 클러치 상황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유럽과 NBA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돈치치는 이미 유럽에서 했던 것처럼 NBA를 정복해 나가는 중이다. 스포츠 선수들 앞에 '천재'라는 수식어를 많이 붙이는데, 농구에서는 돈치치 앞에 붙이기 딱이다. 지난 2018년 12월 24일 댈러스와 포틀랜드의 경기가 포틀랜드의 홈인 모다센터에서 열렀다. 경기는 포틀랜드가 이겼지만 내 기억에 남은 건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고 갔던 돈치치의 버저 비터다. 4쿼터 0.6초 남은 상황에서 돈치치는 패스를 받자마자 자세를 잡을 새도 없이 공을 위로 높게 던졌고, 이 공은 그물을 갈랐다. (2018-2019 시즌 H/L 첫 장면에 나온다.)
당시 현지 해설진은 목이 터져라 이 말을 반복했다. 말도 안 되는 버저비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워낙 NBA에서는 자주 나오는 장면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 이 슛이 그냥 '뽀록', 그러니까 운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돈치치의 경기를 2년 동안 봐온 사람을 알 것이다. 이것도 모두 감각이고 그의 농구 센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매직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이틀 전 발목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돈치치는 40득점 이상 동반 트리블 더블에 역전 버저비터까지 만들어냈다. 말이 안 나오는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만 보면 돈치치는 정말 극강이다. 레너드, 폴 조지(aka. Play-off George)도 돈치치를 쉽게 막지 못한다.
댈러스는 상당히 재밌는 팀이다. 젊은 선수가 많을 뿐 아니라 구단주의 성격 탓인지 노비츠키의 영향인지 유럽 선수도 많다. 돈치치가 그 중심을 잡고 있는데, 팀 분위기도 매우 좋아 보인다. (보반 마리야노비치 덕도 있는 듯)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가 기대되는 팀이다. 다만 올해 당장 우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크리스탑 포르징기스만 건강하고 적당한 전력 강화만 이뤄진다면 향후 5년 내로 댈러스는 리그 최정상 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팀의 중심에 있는 젊은 돈치치가 유럽에 이어 NBA 정복까지 시도하는 그 과정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사진출처 : 댈러스 매버릭스 홈페이지, Eurohoops, Dalla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