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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성근 Aug 24. 2020

원망스러운 나이키의 사업 전략

코비 브라이언트와 'THE DRAW'

"응모에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도전해주세요.

항상 나이키닷컴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키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한 두 번도 아니고 또?' 드로우에 탈락한 것이다. 나이키는 공식 홈페이지(공홈)를 통해서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고 있는데, 인기가 많은 제품은 '추첨제'를 통해서 당첨이 된 사람에게만 판매를 하고 있다. 나이키에서는 이를 드로우(the Draw)라고 부르는데, 나이키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당첨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실제로 나는 지난 몇 년간 수십 차례 응모에도 단 한 번도 당첨되지 못했다.


덩크 제품에 이어 코비까지 계속 탈락하고 있는 필자


실로 뛰어난 판매 전략이다.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거다. 신발이 당첨된 사람은 직접 신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재판매(리셀 :resell) 하는 경우도 꽤 많다. 리셀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은 원가보다 높아지고, 그 제품의 값은 원가가 아닌 리셀가로 평가받게 된다. 그래서 조던 1, 조던 11 등 숫자가 붙은 프라임 조던 신발은 수십만 원을 상회하고, GD(지드래곤)가 직접 디자인한 에어포스 신발도 부르는 게 값이 됐다.


나이키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생산을 극소량으로 조절하는 건 아무 기업이나 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그만큼 자신의 제품의 확신이 있고, 다른 제품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이키나 할 수 있는 전략이다. 신생 브랜드나 죽어가는 브랜드는 따라 할 수 없다. 결국 아래와 같은 흐름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이키 공화국은 굳건히 유지되는 분위기다. 참고로 나도 나이키 공화국 당원이고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 사회를 윤택하게 이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이키 신발 인기 → 제품 공급 조절 → 희소화 → 제품 가치 상승 → 브랜드 가치 상승


2020년 8월 23일은 NBA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42번째 생일이다. 안타까운 사고로 코비와 그의 딸은 세상을 떠났지만, 전 세계 코비 팬들에게 코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코비를 추모하는 유니폼과 시그내쳐 농구화의 발매다. 이미 코비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코비 농구화의 값은 상당히 높아져있었다. 심지어 한국 시간으로 발매일은 8월 24일이었다. 숫자 8과 24는 코비가 레이커스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 나이키스러운 발매였고, 내 지갑은 이미 와이드 오픈(농구에서 좋은 슛 기회) 상태였다.


한국 나이키는 가장 위에서부터 2개의 신발만 공개했다.



발매된 신발은 코비 종류에서도 가장 수작으로 평가받는 '코비 5 프로트로' 모델이었다. 김선형, 조성민 등 국내 농구선수들도 즐겨 신고,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코비 4와 함께 인기가 많은 신발이다. NBA 중계에서도 현역 선수들이 이 농구화를 신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다섯 종류의 코비 5가 발매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2개만 공개됐다. 코비를 상징하는 문구들이 프린팅 된 '빅 스테이지'와 레이커스의 보라색이 선명한 '5X CHAMP'다. 사진 위에서부터 첫 번째와 두 번째 제품이다.


나는 나이키 개인 계정으로 2개를 응모를 하고, 농구를 좋아하지는 않는 친구와 회사 동료, 가족의 계정까지 총 14개의 응모를 넣었다. 다른 드로우 때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응모한 적은 없었다. '한 개는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코비를 정말 좋아했던 농구팬으로 리셀을 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당첨이 되면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박스채 집에 고이 소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모두가 나섰으나 코비 5를 영접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적어도 내 주변 농구 동호인들 중에서는 당첨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첨된 분들은 정말 축하드린다.


'그래 코비(신발)가 덜 풀리는 게 코비(사람)를 위한 일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나이키가 수백만 족의 코비를 내놓으면 오히려 세상을 떠난 코비를 통해 돈을 벌어 들인다고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코비 브라이언트를 보면서 농구를 접하고 농구를 해온 팬은 아쉽기 마련이다. 물론 제 값에 사지 못해서 아쉬운 거다. 아예 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부터는 중고 카페나 리셀 사이트를 통해서 코비 5를 찾아봐야 한다.


그럼에도 나이키에게 한마디 말을 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번 코비 발매는 팬들의 요구가 먼저 있었다. 상술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코비 사망 직후 나이키에서 코비 관련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었기 때문이다.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나이키는 코비의 생일 코비 제품들을 발매하면서 '추모'의 성격을 담았다. 이번에 나온 코비 유니폼도 그가 평생 입었던 노란색과 보라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나와 같은 많은 농구팬들그 추모에 동참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코비를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코비 농구화를 소장하면서 꺼내보고 그를 기억하는 게 아주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근데 나이키는 애석하게도 그 기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다. THE DRAW는 정말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판매 전략이지만, 이번 발매가 레전드의 죽음을 추모하는 성격을 담고 있었던 만큼 조금 더 많은 팬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출처 : 미국 나이키 홈페이지, 개인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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