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D Mar 08. 2024

안녕 엄마

05.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뒤죽박죽인 기억은 글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감정을 알기 위해 기억을 곱씹으면

우리 엄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곱씹으면

또다시 마주하는 그때의 감정이 참 괴롭다.

꺼내려다 말고 다시 꺼내려다 말기를 수십 번, 수백 번

계절이 3번째 바뀔 무렵에야 나는 엄마의 마지막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엄마는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팠던 엄마는 본인이 어느 순간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혼자서 멀리 떠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아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멀리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아빠와 함께 가곤 했다.

자식인 나는 별로 믿음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혼자 공부하고 돈을 벌어 대학에 갔고 공부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엄마는

떠나기 1년 전부터는 늦게라도 자격증을 따보겠다며 이것저것 공부하고는 했었다.

사회복지나 보육 자격증을 공부하며 줌 수업을 열심히 듣던 게 눈에 선하다.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컴퓨터로 글 쓰는 것을 누구보다 어려워하면서도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몸이 안 좋아진 게.

새벽까지 고생하면서 공부하기 전에 말렸어야  했나. 후회만이 가득하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고통 때문에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토요일 아침 엄마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엄마는 일어나서 밥도 먹을 정도로

괜찮았다.

밤새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괜찮아서 앉아서 밥을 먹을 힘이

생겼다고 그랬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엄마는 하나님께 새벽 내내 기도했고 응답받은 거라고 이야기했다.

신난 아이처럼 들떠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이 슬픈 와중에 처연해 보이기까지 해서

나도 애써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거봐 엄마. 별거 아니었잖아. 금방 낫고 다시 집으로 갈 수 있어.”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엄마를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사진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되었다.


엄마가 아픈 그 주는 남자친구의 생일이었다.

주말에 생일을 기념해서 좋은 곳에 가자고 예약해 놓았지만 엄마 걱정에

나는 생일을 축하해 주러 좋은 곳에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상황을 이해해 주었고 우리는 엄마의 병원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간소하게나마 축하를 했다.

남자친구한테  미안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그냥 엄마 옆에 붙어 있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겠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로 머릿속이 얼룩진다.

왜 그랬을까.

왜 더 함께 있지 못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넌 몰랐잖아.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그렇게 행동할 거야.”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알고 머리로는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생각하기 싫어도 곱씹어지는 그때의 상황들과

앞날을 몰랐던 나의 행동은 너무도 무지하여

나는 후회와 혐오를  곱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려나.


주말 동안 엄마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엄마가 입원해 있던 작은 병원은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다른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더욱더 실감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그 이후로는 정말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이전 04화 안녕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