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발을 디딘 모든 곳에 불행이 들러붙다
발을 디딘 모든 곳에 불행이 들러붙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엄마’ 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한 말도 ‘엄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면서 한 번도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낼 때 어색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엄마’라고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다.
우리 엄마를 부를 때뿐만이 아니라 그냥 그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다.
내가 27년 동안 살면서 ‘엄마’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야 하나.
아님 이제 ‘엄마’라는 단어가 혀끝에만 맴돌아 소리 내어 이야기하기 어렵게 된
나의 처지를 불행하다고 여겨도 되나.
내가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땅이었던 엄마가 없어진 지금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 자신이 없다.
엄마가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한 지 2주 동안 엄마의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경 쪽은 아닌 것 같네요.
다른 쪽일 수 있으니 조직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혈액 쪽이네요.
혈액종양 쪽 교수님과 연결해 드릴 테니 검사를 받아보세요.
혈액암은 요즘 약도 많이 개발되어 있고 예후도 좋은 편이에요.
엄마는 혈액 검사를 받았지만 혈액암이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전문 의학용어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는 전신에 있는 암을 검사하는 펫시티 검사를 받았다.
펫시티 검사를 받는 동안 위나 대장과 같은 곳의 조직검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엄마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2주의 시간 동안 기다리는 가족들의 심정은 절박했다.
병원이라는 곳이 참 잔인하다.
나는 퇴근 후의 시간 동안 엄마의 옆에 너무나도 있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는 한 명만 출입이 가능했고
그마저도 엄마는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 간호병동으로 갔기 때문에 더더욱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 수가 없다.
퇴근 후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던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침대에 누워있었을까.
2주 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결과가 빨리 나와서 무슨 치료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정확한 병명 및 발병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진통제만
투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병명을 알면 원인을 알면
금방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
만약의 상황에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될 수도 있으니 혼자 서울의 큰 병원 3곳에
회원가입을 하고 외래를 잡아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메일이 왔었는데 허탈한 마음에 클릭도 못해봤다.)
응급환자로 이송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여차하면 응급 상황으로
가는 것도 염두에 두곤 했다.
2주가 지난 3월 27일 월요일.
엄마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보호자가 병원에 들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의사와의 약속 시간이 3시 반 정도였다.
아빠는 강원도에서 바로 오기로 했었고 나는 직장에 이야기한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이제 드디어 병명을 알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감도 들었던 것 같다.
살면서 가졌던 희망이 그런 식으로 처참히 부서졌던 적이 없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눈앞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보이지 않는 정말 깜깜한 절망이었다.
불행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