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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Apr 08. 2024

안녕 엄마

08. 남겨질 사람들


누가 그랬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는 것은 아픈 사람도 힘들지만

그 가족들 또한 힘든 일이라고.

그 말이 맞다.

아픈 사람도 힘들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옆에 그저 남겨져  있는 사람들은

끝도 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그렇게 희망만을 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행이 우리에게 찾아올 리 없어.

라고 되니이면서 말이다.

나는 남겨질 사람이었다.

이미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질 것을 알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따님분은 앞에 얘기를 많이 못 들으셨으니까 잠시 남아주시겠어요?”

막 진료실을 나가려는 내 뒤로 의사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나가고 진료실에는 나와 의사뿐이었다.

“하아…그 환자분이 계실 때는 차마 못 드렸던 이야기가 있어요.”

“따님 분이 어느 정도 장성하신 것 같아서 따님분께 말씀드리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이야기의 시작이 이상했다.

아까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니 치료해 보자고 하지 않았었나.

이게 무슨 소리지.

환자분께서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으세요.
이렇게 뼈에 전이되는 경우는 잘 없는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발견이 늦어져서 이미 발견했을 때는  암이 너무 진행돼서 항암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경우도 많습니다.
환자분께서는 발견이 너무 늦어서 항암치료가 너무 위험한 상황이에요.
따님분께서 아시다시피 환자분께서 혈액 내 수치도 좋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지혈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빠르면 한 달 내지 늦어도 3개월로 보고 있는데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서
저희가 아무것도 장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의사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참 침착했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였을까.

나는 엄마가 시한부 생활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은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작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야기하는 의사의 표정은 단호했다.

차가운 단호함이라기보다는 정말 현실이 그러했기에 감정을 제외하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정말이구나 싶었다.

‘의사는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얘기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의사가 말하는 내용과 그 모습이

너무 단호해서 정말 진심으로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거구나.

하고 그 진료실에 앉아 있던 시간 내내 피부로 직접 느껴버린 것이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웠다.

실제로 엄마가 쓰러지고 검사결과를 듣기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2주 동안

상태는 정말 급속도로 안 좋아졌으니까.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혈액의 수치가 좋지 않고 조직검사를 진행한 부분의

지혈이 되지 않아서 헌혈이 필요하다고 병원에서 자꾸 연락이 왔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뭔지 피를 수혈하는 방식이 변경되어서

꼭 지정헌혈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지정헌혈이란 헌혈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피를 수혈할 환자를 꼭 지목하여야 하고

그렇게 채혈된 피만 수혈할 수 있다는 방식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에게 피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2주 동안 시시때때로 가끔 한 갑작스럽게.

다행히도 주변의 감사한 분들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선뜻 헌혈을 해주셨다.

너무나도 한탄스러웠던 것은 우리 가족 중에 O형 피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변 친척들 주변 지인들에게 O형 피를 구하는 연락을 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피를 구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런 것조차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진짜 마음이  사무치도록 너무 싫었다.


아직도 미안하다.  미안할 일이 아닌 걸 아는데도 미안하다.

그냥 그때 생각을 하면 엄마한테 미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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