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사람은 다 죽음을 향해서 살아간다.
목표가 죽음이 아니어도 어쨌든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달리는 삶이라니.
나는 평범함을 사랑했기에 무엇하나 튀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직장에서 적당히 돈도 벌고
적당히 적당히. 마땅히 열정을 쏟고 싶은 곳도 없었다.
내 모든 삶의 지지대였던 엄마가 사라졌을 때
내 죽음의 시계가 켜진 느낌이었다.
뭐든지 중간만 하자라는 내 시간에 죽음이 새겨졌다.
사람은 죽는다. 노년이 되어 죽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이 평범한 특별함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3월 27일, 엄마의 검사결과를 들은 날이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항암을 해야 한다면 그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항암이 잘 될 수 있다. 엄마가 다시 집에 올 수 있다.
그 문장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무던히 노력했다.
다음날 사직서를 내야 한다고 직장에 이야기했다.
내가 일을 하고 아빠가 간호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아빠가 버는 벌이가 사회초년생인 나의 벌이와는
차이가 컸다.
항암을 지속적으로 한다고 했을 때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더 옳았다.
내가 일하는 직업 특성상 거의 대부분이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를
끌고 가기 때문에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만두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는 인수인계와 마무리로 정신이 없었고
생전 처음 해보지도 못한 병간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근 후에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를 검색해보곤 했다.
매일 저녁마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엄마는 말하기가 힘들어서 전화통화 하기를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나는
억지로라도 전화했다.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서, 목소리라도
들어야 그날 밤에 잠에 들 수 있었다.
3월 31일 금요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급하게 그만두게 되어서 정리할 것이 많아 그날은 야근을 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같이 남아 짐정리 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병간호하면서 종종 오라고. 엄마 괜찮아지시면 같이 밥도 먹자고 했다.
친구가 짐 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와주었다.
짐이 많아서 같이 들고 집으로 갔다.
저녁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서 짐을 집에 놓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집에 아빠가 없었다. 이상하다.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했다.
아빠가 울먹였다.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끊었다.
친구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주었다.
친구 손에 이끌려 울며 불며 중환자실로 갔다.
의료진 두 명이 아빠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의 눈가와 얼굴이 빨갰다.
“엄마 심장이 멈췄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