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삶의 영역, 죽음의 영역
삶의 영역, 죽음의 영역
삶과 죽음.
우리는 그 모호한 경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움직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죽음을
코앞에 둔 인간의 삶에 대한 허상뿐일 수도 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람의 숨이 끊어진다는 것은 정말 단 한순간이었다.
엄마의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3월 10일 엄마가 쓰러지고 2주가 조금 넘은 무렵이었다.
진료실의 문을 여니 먼저 도착한 아빠가 엄마와 함께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2주 만에 처음 보는 엄마였다.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사진을 보고 있었고
아빠는 뒤쪽에 앉아 의사의 곁에 있었다.
엄마의 몸은 여러 가지 선들로 뒤덮여 있었다.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것들이었다.
생각보다 더 무거운 진료실의 공기에 조용히 아빠의 뒤에 앉았다.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간 뒤인지 항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항암에는 약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일단 환자 분의 상태에 맞는 항암약을 써보는 것으로 하지요.
위나 대장 갑상선 등의 기관에서 전이된 암의 형태로 보입니다.
조직검사를 해봤을 때 정확하게 암의 형태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환자분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렸습니다.
어렵겠지만 항암을 일단 받아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해 볼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다큐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발전된 의학으로 그 무섭다는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우리 엄마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진료실에 들어온 후
울먹이며 손을 잡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인생이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드네.”
사람이 행복회로를 돌린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그래도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사실 머릿속에서는 지금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득했으니 말이다.
의사의 설명이 끝난 후 같이 진료실을 나가려는 찰나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따님 분은 앞에 설명을 잘 못 들으셨으니까 잠시 남아주시겠어요? “
인생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내가 들은 소리가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점.
의사가 내게 했던 말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어서
나는 진료실에서는 내심 침착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문 밖으로 나온 나는 대기 의자에 아빠와 함께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펑펑 울어버렸다.
인생이 나한테 잔인한 게 아니라
엄마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에 토악질이 나왔다.
울음을 참아도 끝도 없이 나오는 통에 말도 잘 못했다.
“무슨 얘기를 들었길래 이렇게 울어. 엄마 괜찮아.”
내가 들은 이야기는 엄마는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의사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의사의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할 수 있었던.
환자의 배우자에게도 하지 못하는 다 큰 자식에게나 할 수 있었던.
그냥 세상이 너무 잔인했다. 우리 엄마에게. 우리 가족에게.